[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현재 꼴찌 선덜랜드를 빛나게 했었던’ 니얼 퀸 <5>
이제 프리미어리그 ‘생존왕’ 구단을 생각하면 바로 선덜랜드 AFC의 이름이 나온다. 선덜랜드는 2007년 승격 이후 매 시즌마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잔류는 대단히 힘든 도전이 될 듯 싶다. 팀이 보강은 커녕 패트릭 반 얀 홀트 등 주축 선수들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성팬들은 구단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렇게 강등만을 면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선덜랜드 팬들로선, 퀸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에서 큰 목소리를 냈던 시절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의 퀸은 아스널 FC에서 트라이얼을 받은 뒤 유스에 입단한 특이한 케이스다. 리버풀 FC를 상대로 한 1군 데뷔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탄탄대로를 걷는가했지만 활약이 저조했다. 입지가 좁았던 그는 맨체스터 시티 행을 택했다.
퀸이 나중에 자서전을 통해 “맨시티에서 축구 선수가 됐다”고 할 정도로 퀸은 맨시티 입성 후 성장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의 활약이 더 좋았으나, 1992/93시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다. 1993/94시즌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활약이 좋지 못 했던 것이 옥의 티였다.
퀸은 당시 클럽 레코드였던 130만 파운드로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데뷔전 맹활약 이후 무릎 부상으로 6개월을 날렸다. 부상 회복 후 퀸이 맹활약했으나 팀의 강등을 막을 순 없었다. 퀸은 2부 리그 행에도 불구하고 팀을 지켰다.
퀸은 2부 리그에 있던 1997년 케빈 필립스와 조우하게 된다. 영혼의 투톱을 이루게 되는 두 선수의 만남. 그야말로 선덜랜드 전설의 시작이었다. 결국 선덜랜드는 챔피언쉽 두 번째 시즌에 승격했고 그 때부터 EPL 무대에서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1999/00시즌 선덜랜드는 승격팀이었지만 그들의 전방에는 퀸-필립스 투톱이 있었다. 퀸이 떨궈주면 필립스가 득점했다. 필립스가 정확한 패스를 넣어주면 퀸이 득점으로 연결했다. 리그에서만 퀸 14골, 필립스 30골이었다.
선덜랜드는 두 선수의 활약으로 승격 첫 시즌 7위를 기록했고 그 다음 시즌인 2000/01시즌에도 7위를 올랐다. 이는 가장 최근에 끝난 2015/16시즌까지도 선덜랜드의 EPL 역대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퀸 역시 흐르는 세월을 멈출 순 없었다. 자신의 신체 능력이 갈수록 떨어짐을 느낀 퀸은 2002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선덜랜드를 사랑한 그는 이후에도 감독, 단장, 회장 등을 역임하며 팀에 기여했다.
◇EPL 최고의 순간
1996/97시즌 프리미어리그 2R 노팅엄 포레스트와 선덜랜드 간의 경기였다. 이날 경기는 클럽 레코드로 이적한 퀸의 선덜랜드 데뷔전이기도 했다. 퀸은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폭발, 팀의 4-1 승리를 견인했다. 화려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타겟 공격수였다.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던 공격수로 자신에게 오는 공중볼을 모두 따냈다. 헤더 득점도 상당했다. 패스 실력도 준수해 짝꿍 필립스의 득점을 이끌어내는 것도 다반사였다.
◇프로필
이름 - 니얼 퀸
국적 - 아일랜드
생년월일 - 1966년 10월 6일
신장 및 체중 - 193cm, 87kg
포지션 - 공격수
국가대표 경력 - 92경기 21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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