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EPL Nostalgia] '팰리스의 자존심' 앤디 존슨 - 36

[EPL Nostalgia] '팰리스의 자존심' 앤디 존슨 - 36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4.29 07:26
  • 수정 2017.07.09 01:3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팰리스의 자존심' 앤디 존슨 <36>

크리스탈 팰리스는 노리치 시티와 함께 4회로 2017년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다 강등팀이다. 올 시즌도 강등이 유력해, 단독 1위로 도약하는 듯 했으나 샘 앨러다이스 감독 부임 후 반등했다. 이에 12위로 올리서며 지금은 강등권과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강등 횟수가 많다는 것은 돌려말하면 프리미어리그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팰리스는 세 차례 승격 후 1년 만에 강등당한 역사가 있는데, 2012/13시즌 승격을 확정한 후 현재 3시즌 간 살아남으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팰리스가 승격 후 한 시즌도 살아남지 못 하던 각각의 시기들에도 스타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강등권 전력에도 많은 득점으로 “우리에게도 스타가 있다”는 맘이 들게 했던 선수가 있다. 즉, 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선수가 있었다.

존슨은 1981년 베드포드에서 태어났다. 루튼 타운 아카데미에서 처음 축구를 배웠으나 버밍엄 시티 유스로 자리를 옮겨 그 곳에서 데뷔했다. 존슨이 1군에 데뷔하고 활약하던 시절의 버밍엄은 2부리그에 있었다.

버밍엄은 2부리그였으나 2000/01시즌에 리그컵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당시 버밍엄은 리버풀 FC와 결승에서 맞붙었다. 연장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 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존슨은 6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하며 팀의 우승을 좌절시켰다.

이로 인한 비판 여론도 컸고, 버밍엄에서의 마지막 시즌 출전도 들쑥날쑥했다. 이에 존슨은 팀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을 확정지었음에도 팰리스로 이적하게 됐다.

그런데 쫓기듯 건너온 팰리스에서 존슨의 실력이 만개했다. 특히 2003/04시즌에는 비록 2부리거였으나 모든 대회에서 32골을 폭발시키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다. 이에 고대하던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2004/05시즌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존슨은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도 자신이 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04/05시즌 존슨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무려 21골을 기록했다. 티에리 앙리에 이어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고, 잉글랜드인 중엔 당연히 1위였다. 이에 당시 스벤 고란 에릭손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의 주목도 받게 됐다.

존슨은 공격수치곤 큰 키가 아니었지만, 대신 빠른 스피드를 활동해 상대 수비수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오픈 플레이에서 나온 득점(10골)보다 페널티킥 득점(11골)이 많아 폄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페널티킥을 잘 차는 것 역시 능력이었다.

다만 팀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다. 팰리스는 승격팀의 한계를 느끼며 19위로 강등당했다. 사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38R까지 강등당하지 않을 확률이 있었다. 찰튼 어슬래틱과의 동런던 더비에서 존슨이 팀의 시즌 마지막 골을 집어넣으며 분전했으나, 2-2 무승부를 거뒀다. 이에 웨스트 브롬위치에 승점 1점 차로 강등당했다.

존슨은 팀의 강등 후 이적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치고 팀과 새로운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본인의 기억에 팰리스란 팀이 좋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재계약 후 “팀의 재승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이뤄지지 않았고 한 시즌 간 최선을 다한 존슨은 1년 후 에버턴 FC로 이적했다.

에버턴에서의 첫 1년은 팰리스 시절과 더불어 존슨이 빛났던 시기 중 하나였다. 2006년 8월 1R 왓포드 FC전에서 데뷔하며 순조롭게 에버턴 데뷔에 성공했다. 이어 3R 토트넘 핫스퍼전 득점으로 21년 만의 승리 공신이 됐고, 4R 리버풀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득점했다. 이 시즌 존슨은 전 대회에서 12골을 득점했는데 당시 에버턴 소속 선수 중 최고 득점 기록이었다.

하지만 존슨이 이후 내리막을 겪었다. 존슨은 2007/08시즌 UEFA컵에서 4골을 득점하며 유럽 무대에선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득점이 6골로 감소했다. 또한 2008년 3월 근육 부상을 당하며 슬럼프가 길어졌다.

존슨이 2008년 풀럼 FC로 이적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존슨은 수시로 찾아오는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서는 경기마다 제 몫을 해줬다. 그러나 풀럼 이적 2번째 시즌인 2009/10시즌부터 득점력이 급감했고, 그 시즌부터 세 시즌 간 프리미어리그 득점이 6득점에 그쳤다.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7R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후 존슨은 2012년 자신이 해트트릭을 선물한 QPR로 이적했으나 4경기만 출전한 뒤 팀의 강등에 따라 2부리거가 된다. 2014/15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있던 친정팀 팰리스 복귀를 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 했고, 시즌 후 그는 유니폼을 벗었다.

◇EPL 최고의 순간

2011년 10월 풀럼과 QPR이 프리미어리그 7R에서 맞붙었다. 당시 마틴 욜 감독 하 풀럼은 개막 후 6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날은 경기 초반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 중심에 존슨이 있었다. 존슨은 전반 1분 만에 득점에 성공하며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이어 전반 38분 득점, 후반 14분 득점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이날 풀럼은 대니 머피, 클린트 뎀프시, 바비 자모라의 득점까지 더한 풀럼은 6-0 대승을 거뒀다.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매우 빠른 주력을 장점으로 하는 선수였다. 순식 간에 상대 뒷공간을 허물어 득점을 해냈다. 점차 연령이 상승하며 주력이 감소된 후에는 문전 앞에서 정확한 골 결정력을 보이며 살아남았다.

◇프로필

이름 - 앤디 존슨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81년 2월 10일

신장 및 체중 - 175cm, 71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8경기

sports@stnsports.co.kr

저작권자 © ST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단영역

매체정보

  • (주)STN미디어(방송국)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419-2 부평테크노타워 8층
  • 대표전화 : 1599-1242
  • 팩스 : 070-7469-0707
  • 법인명 : (주)에스티엔미디어
  • 채널번호 : 지니 TV(131번) LG 유플러스 TV(125번) 딜라이브(236번)
  • 대표이사 : 이강영
  • 보도본부장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주)STN뉴스(신문사) : (0723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23 (정원빌딩) 10층
  • 대표전화 : 02-761-2001
  • 팩스 : 02-761-2009
  • 법인명 : (주)에스티엔뉴스
  • 제호 : STN 뉴스
  • 등록번호 : 인천 아 01645
  • 등록일 : 2009-09-04
  • 발행일 : 2009-09-04
  • 대표이사 : 유정우
  • 발행·편집인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Copyright © 2024 STN 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ports@stnsports.co.kr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