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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부상에 발목 잡힌 아이돌' 제이미 레드납 <15>

[EPL Nostalgia] '부상에 발목 잡힌 아이돌' 제이미 레드납 <15>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3.07 08:03
  • 수정 2017.03.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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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부상에 발목 잡힌 아이돌' 제이미 레드납 <15>

현재는 가족 관계로 인해 관심을 받는 사람이 있다. 프랭크 램파드의 사촌이고,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의 조카이며, 해리 레드납의 아들이자 루이스 레드냅의 남편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한 때 그라는 사람 자체로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훌륭한 실력을 지닌 프리미어리거이기도 했다.

레드납은 토트넘 핫스퍼 유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프로 데뷔는 AFC 본머스에서 했다. 그 이유가 있다. 당시 본머스의 감독이 해리 레드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란 배경과는 별개로 레드납은 촉망받는 선수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케니 달글리쉬 감독으로 인해 1991년 만 17세의 나이에 리버풀 FC로 이적했다.

리버풀 입성 초기에는 자리를 못 잡고 헤맨 편이었다. 그를 데려왔던 달글리쉬 감독이 약 한 달 만에 충격적인 사임을 했기 때문이다. 레드납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시즌인 1992/93시즌까지는 교체 멤버에 머물렀다. 인고의 시간 끝에 1993/94시즌이 돼서야 정기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출전이 보장되자 레드납은 거칠 것이 없었다. 중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며 활약했다. 점차 레드납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해갔다.

이와 동시에 레드납은 축구 외적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출범하지 얼마 되지 않은 프리미어리그는 스타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때문에 레드납을 비롯하여 리 샤프, 라이언 긱스 등 젊은 스타들이 주목을 받았는데, 이들은 프리미어리그의 아이콘으로 사진 촬영 등 많은 상업적인 활동의 모델이 됐다. 당시 레드납은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로 CF도 자주 촬영했다. 그야말로 아이돌이었다.

축구 외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경기장 위에서의 그의 모습은 꾸준했다. 1994년 1월에 취임한 로이 에반스 감독 체제 하에서 레드냅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욱 상승했다. 하지만 1부리그를 호령하던 1980년대에 비해 팀 성적이 그에 따라주지 않았고, 팀의 얼굴이었던 레드납은 자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당시 리버풀은 레드납을 비롯하여 스티브 맥마나만, 제이슨 맥아티어, 스탄 콜리모어, 로비 파울러, 데이빗 제임스 등 재능 있는 젊은 스타들이 즐비했다. 이 젊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라커룸 문화를 만들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했고, 나쁘게 말하면 문란했다.

팀 성적만 따라주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유명 걸그룹이었던 ‘스파이스 걸스’를 빗대 축구 선수들이 아닌 ‘스파이스 보이즈’라는 비난을 들었다. 경기장 위에서의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스타인 레드납을 향한 비난 지분이 가장 많았다. 축구에 갖는 관심보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더 많다는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비판과는 달리 경기장 안에서의 영향력은 더 높아져갔다. 공간 창출 능력,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 세트 피스 득점 능력, 중거리슛 능력까지. 그는 1998/99시즌 제라드 훌리에 감독 아래서 리그에서만 10골을 신고하며 정점을 찍었다. 1999/2000시즌에는 리버풀의 주장으로까지 임명됐다.

레드납은 2000/01시즌 리버풀을 3위에 올려놓는데 기여했으나, 그 시즌 당한 부상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야 말았다. 레드납은 미국의 전문의인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에게 수술을 받을 정도였다. 2000/01시즌 리버풀은 미키마우스 트레블을 달성하며 행복한 시즌을 보냈으나 레드납 개인으로서는 아쉬운 시즌이었다.

2001/02시즌을 앞두고 복귀에 성공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그의 입지는 좁아졌다. 결국 레드납은 2002년 자유 계약으로 토트넘 핫스퍼에 합류했다. 그의 토트넘 데뷔전 상대는 리버풀의 라이벌 에버턴 FC였다. 이 경기에서 레드납은 매튜 에더링턴의 득점을 이끌어내어, 前 리버풀 주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레드납이 2년 반 동안 토트넘을 위해 헌신했지만, 레드납의 무릎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레드납은 2005년 1월 사우샘프턴 FC로 이적했다. 그 곳에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해리 레드납의 사우샘프턴 첫 영입 선수였다.

레드납은 풀럼 FC전에서 데뷔하며 사우샘프턴에서의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사우샘프턴 생활은 부상으로 점철됐다. 그는 사우샘프턴 소속 내내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 결국 2004/05시즌이 끝난 뒤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은퇴를 선언했다.

◇EPL 최고의 순간

1994년 5월 14일. 1994/95시즌 리버풀과 블랙번 로버스가 프리미어리그 42R 최종전에서 맞붙었다. 전반 20분 앨런 시어러의 골로 블랙번이 앞서갔으나, 리버풀이 후반 19분 존 반스의 골로 균형을 맞춘 상황이었다. 후반 48분 박스 앞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레드납이 그림 같은 득점으로 연결한다. 팀의 UEFA컵 진출을 확정짓는 골이었다.

◇플레이 스타일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중앙 미드필더였다. 특히 패스 능력이 훌륭하여 상대팀의 강한 압박에도 리버풀이 손쉽게 공격을 전개할 수 있게끔 했다. 킥 능력도 뛰어나 프리킥 득점도 종종 터트리곤 했다.

◇프로필

이름 - 제이미 레드납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73년 6월 25일

신장 및 체중 - 183cm, 75kg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17경기 1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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