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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팀 향한 헌신의 표본' 디르크 카윗 - 46

[EPL Nostalgia] '팀 향한 헌신의 표본' 디르크 카윗 - 46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5.20 10:28
  • 수정 2017.07.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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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팀 향한 헌신의 표본' 디르크 카윗 - <4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은 지난 17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 시즌 팀의 우승을 이끈 레전드가 은퇴를 선언했다. 이 레전드는 은퇴 후 팀의 기술 경영팀에서 일하게 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팬들 중의 대부분은 이 레전드의 프리미어리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리버풀 소속으로 팀을 향한 헌신의 표본을 보여줬던 바로 그 인물이다.

1980년에 태어난 카윗은 1998년 퀵 보이스라는 아마추어 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위더레흐트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다. 리버풀 FC로 떠나기 전 4시즌 간 모두 20골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에레디비지에에선 득점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카윗을 눈여겨보고 있던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2006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카윗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적이 확정됐다. 카윗은 “훌륭한 빅클럽의 제의가 아니라면 페예노르트를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리버풀이 바로 그러한 클럽이고 나는 이적을 결정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며 입단 소감을 밝혔다.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첫 시즌인 2006/07시즌 카윗의 장점과 한계가 명확히 나타났다. 먼저 장점은 활동량과 압박이었다. 최고 수준이었다. 최전방에서 자신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카윗에 상대 수비수들은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에레디비지에 시절에 비해 득점력이 하락한 것이었다. 여러 호평과 혹평 속에 카윗은 첫 시즌을 마친다.

그리고 2007년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영입된다. 토레스가 전방 스트라이커 자원이었기에 카윗의 입지가 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베니테즈 감독은 카윗의 장점을 살려 그를 윙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시켰다. 그리고 이는 큰 효과를 봤다. 카윗의 전방위적 헌신에 리버풀은 더 유기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득점력이 더 하락한 것도 사실이었다. 카윗은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 9R 에버턴 FC와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PK 멀티골로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2007년 프리미어리그 13R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득점했다. 그리고 이후 득점이 없었다.

그러나 카윗이 2008/09시즌 카윗이 금새 부활했다. 이 시기 리버풀도 승승장구했다. 리버풀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Best11을 보유하고 있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벌였다.

2009/10시즌 들어 리버풀 스쿼드에 부상 악령이 닥쳤다. 이에 카윗이 분투하게 됐다. 카윗은 어떤 경기에선 기존에 맡던 중앙 스트라이커 역할로, 어떤 경기는 이전 시즌 맡던 윙포워드 역할로 활약했다. 프리미어리그 25R 머지사이드 더비서 득점하는 등 큰 경기서 강한 모습을 보였고, 헐 시티와의 38R 경기에서 리버풀에서의 200경기 출장을 달성하는 경사도 누렸다.

카윗의 활약이 계속됐다. 2010/11시즌 3월 프리미어리그 29R 맨유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리버풀도 4월 그간의 공적과 앞으로 팀의 미래를 위해 그와 2013년 여름까지 연장계약을 채결했다. 계약 직후 프리미어리그 33R 아스널전에서 후반 57분 늦은 PK 득점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1/12시즌은 카윗에게 있어 최악의 시즌이었다. 2011년 전반기에 리그 골이 아예 없었다. 그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실축하며 눈물을 삼켰다.

다행히 새옹지마였다. 2012년 1월 23R 울버햄튼 원더러스 전에서 프리미어리그 50골 고지에 올랐다. 리버풀 소속으로 15번째의 쾌거였다. 그리고 리그컵 우승으로 훌륭한 시즌 끝마무리를 했다.

2011/12시즌이 끝난 뒤 리버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케니 달글리쉬 감독이 떠나고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카윗이 고민했다. 스피드와 득점력이 필요한 윙포워드를 선호하는 로저스 감독, 또 도전이 필요한 자신의 상황.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적이었다.

카윗은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페네르바체 SK 이적을 확정했다. 카윗은 “페예노르트에서 제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됐다. 앞으로의 도전이 기대된다. 리버풀 구단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시간입니다. 리버풀과 팬들은 제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카윗은 페네르바체를 거쳐 2015년 친정팀 페예노르트로 복귀했다. 에레디비지에 최종전 헤라클레스전에서 해트트릭으로 우승을 이끈 뒤 은퇴를 선언했다.

◇EPL 최고의 순간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29R에서 철천지 원수 리버풀과 맨유가 맞붙었다. 루이스 수아레스의 도움도 컸으나 카윗이 날았다. 카윗은 전반 34분 수아레스가 상대 좁은 진영에서 내준 공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전반 39분에는 루이스 나니의 헤더 실수를 득점으로 연결했다.

후반에도 카윗의 활약은 이어졌다. 후반 20분 수아레스의 프리킥이 에드윈 반 데 사르 골키퍼를 맞고 나온 것을 득점,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리버풀은 카윗의 활약에 힘입어 후반 47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한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맨유를 3-1로 제압했다. 완벽히 카윗의 날이었다.

◇플레이 스타일

현란한 드리블이나 정확한 킥을 보유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무서운 골문 앞 집중력으로 단점을 커버했다. 박지성과 함께 수비적인 능력이 훌륭한 공격 자원으로 자주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프로필

이름 - 디르크 카윗

국적 - 네덜란드

생년월일 - 1980년 7월 22일

신장 및 체중 - 183cm, 76kg

포지션 - 윙포워드,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104경기 24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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