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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유쾌한 다이버' 위르겐 클린스만 - 42

[EPL Nostalgia] '유쾌한 다이버' 위르겐 클린스만 - 42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5.09 10:27
  • 수정 2017.07.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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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유쾌한 다이버' 위르겐 클린스만 - <42>

지난 4월 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마커스 래쉬포드의 행동이 갑론을박을 낳았다. 래쉬포드는 전반 47분 우카시 파비안스키 골키퍼와의 충돌 후 넘어졌다. 이를 두고 다이빙이다란 의견과 아니다란 의견이 대립했다. 비단 이날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빈번히, 또 수많은 다이빙 논쟁이 벌어지고, 이는 격렬한 토론을 부른다.

이처럼 다이빙이 큰 대립을 불러오는 이유는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말 다이빙일 경우 수비팀이 위협적인 기회를 헌납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다이빙이 아닌 일을 다이빙이라고 단정짓는 일들이 계속되면 선수들을 부상으로 보호하지 못 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 스타들 중에서 이런 민감한 다이빙 논란을 유쾌하게 해명한 스타가 있었다.

클린스만은 1964년 서독의 괴핑겐에서 태어났다. 제빵사였던 아버지가 슈투트가르트에 제과점을 내게 되면서 클린스만도 자연히 슈투트가르트에 정착했다. 지역 팀인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 1978년 유스로 입단했다. 이후 1982년 2부리그였던 소속 팀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클린스만은 팀에서 스프린트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배우는 등 한 단계 성장했다. 이후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의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여 1987/88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다.

1989년 클린스만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리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클린스만은 인테르에서 로타어 마테우스,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함께 게르만 삼총사를 구성, 맹활약하며 족적을 남겼다. 1992년 AS 모나코로 이적한 클린스만은 2년 간 활동한 뒤 1994년 토트넘 핫스퍼 이적을 확정지으며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당시 클린스만에 대한 잉글랜드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당연히 실력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다이빙을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조롱하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1990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4강에서 탈락시킨 서독의 주요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스만이 빠르게 자신에 대한 평을 바꿔놓았다. 먼저, 다이빙 논란에 관한 대응은 유쾌하게 받아쳤다. 클린스만은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자 그의 데뷔전이었던 1R 셰필드 웬즈데이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했다. 클린스만은 득점 이후 다이빙 셀레브레이션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자신의 다이빙 이미지를 흥미롭게 벗겨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실력으로 돌려놨다. 클린스만은 1994/95시즌 한 시즌 간 리그에서만 41경기 21골을 넣은 것을 비롯하여 모든 대회 50경기에서 총 30골을 득점했다. 잉글랜드 팬들, 특히 토트넘 팬들은 그를 보고 열광하게 됐으며, 냉소적인 기자들조차 클린스만에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FWA 올해의 선수상 역시 그의 몫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클린스만이 독일 복귀를 택했다는 것이었다. 뮌헨의 오퍼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금새 클린스만에 정이 든 잉글랜드 팬들은 슬픔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토트넘과 클린스만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97/98시즌 토트넘은 전반기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특히 10월부터 12월까지 3승 1무 8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거두며 강등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토트넘은 당시 UC 삼프도리아에 뛰고 있던 클린스만에 급하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임대 온 클린스만은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복귀하여 프리미어리그 23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 득점으로 팀에 4경기 만이자 약 한 달 만의 승리를 이끌었다. 클린스만은 특히 37R에서 같이 강등권 탈출 경쟁을 하던 AFC 윔블던을 상대로 4골을 폭발시키며 맹위를 떨쳤다.

결국 클린스만은 9골을 득점하며 팀을 강등 위협에서 구해냈다. 다비드 지놀라와 함께 팀 내 최다득점자도 됐다. 시즌 후 그는 클럽 커리어는 마무리했다. 하지만 2003년 오렌지 카운티 블루 스타라는 아마추어 팀에 깜짝 복귀하여 팬들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선사했다.

◇EPL 최고의 순간

1998년 5월 프리미어리그 37R에서 토트넘과 윔블던이 맞붙었다. 두 팀은 모두 강등 위협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절체절명의 승부에서 ‘다이버’ 클린스만이 날았다. 클린스만은 무려 4골을 폭발시켰다. 레스 퍼디난드와 무사 사이브의 골까지 더한 토트넘은 피터 피어가 2골을 기록하는데 그친 윔블던을 제압했다. 강등 위기에서도 당연히 벗어났다.

◇플레이 스타일

만능 스트라이커였다. 드리블, 슈팅 능력, 스피드, 제공권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문전 안팎에서 수비수들을 힘들게 하는 공격수였다. 어느 상황, 어떠한 자세에서도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위르겐 클린스만

국적 - 독일

생년월일 - 1964년 7월 30일

신장 및 체중 - 181cm, 76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108경기 47골(서독 - 26경기 7골, 독일 - 82경기 40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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