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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우아함과 짜증이 상징이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54

[EPL Nostalgia] '우아함과 짜증이 상징이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54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17.06.05 07:21
  • 수정 2017.07.06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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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우아함과 짜증이 상징이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54>

지난 4일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위치한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마이클 캐릭 자선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는 2008년 맨유 멤버들인 ‘맨유 08’팀과 마이클 캐릭와 친한 선수들이 모인 ‘마이클 캐릭’팀의 대결로 펼쳐졌다. 이 두 팀에는 박지성을 비롯 10여 년 전 우리를 설레게 했던 스타들이 즐비했다. 그 중 이 선수도 있었다.

베르바토프는 1981년 불가리아의 블라고에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운동선수의 피가 흘렀다. 아버지인 이반 베르바토프는 CSKA 소피아 등에서 뛴 축구선수 출신이었고, 어머니인 마르가리타 베르바토바는 핸드볼 선수 출신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베르바토프는 일찍부터 축구에 두각을 나타냈다. 원래 그는 팀은 AC 밀란, 선수는 마르코 반 바스텐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유로 1996를 보고 난 뒤 팀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수는 앨런 시어러로 바뀌었다. 자연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은 욕망도 생겨났다.

하지만 바로 프리미어리그와 인연을 맺진 못 했다. 베르바토프는 만 18세의 나이로 아버지가 몸담았던 CSKA 소피아에서 1998년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오랜 기간 진주하며 활약했다.

베르바토프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것은 2006년의 일이었다. 그는 1,600만 유로(한화 약 202억원)라는 금액으로 토트넘 핫스퍼에 입성했다. 이로 인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불가리아 선수가 됐다. 베르바토프는 1R 볼튼 원더러스전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했고, 2R 셰필드 유나이티드전에선 첫 득점을 올렸다.

베르바토프가 11월까지는 적응 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이후 득점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 베르바토프는 로비 킨과 투톱을 이뤘는데, 이 둘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베르바토프가 머리와 발을 이용하여 빈 공간으로 공을 넘겨주면, 킨이 이를 잡아 마무리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는 상대 수비수들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첫 시즌 베르바토프가 받아든 성적표는 49경기 23골. 프리미어리그만 해도 33경기 12골이었다. 모두 팀내 최다 기록이었다. 게다가 경기력까지 훌륭했던 베르바토프는 2006/07시즌 토트넘 최우수 선수상과 프리미어리그 선수협회 선정 Best 11에 이름을 올렸다.

두 번째 시즌 들어서도 베르바토프의 활약은 이어졌다. 2008년 2월에는 리그컵을 들어올리는 경사도 함께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킨과 변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인물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베르바토프를 영입하기 위해 토트넘에 비드를 넣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르바토프는 맨유 합류를 위해 이적 요청을 했다. 토트넘의 회장인 다니엘 레비로선 화가 날 수 밖에 없었고, 협상은 장기화됐다. 토트넘은 베르바토프를 명단에서 제외시키며 강경책을 썼다. 이적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적은 가까스로 이뤄졌다. 베르바토프는 이적 시장 마지막날 약 30m(한화 약 433억 원)의 금액으로 맨유행을 확정했다. 그의 맨유 데뷔전은 3R 리버풀 FC전이었다. 베르바토프는 찰떡 호흡을 자랑했던 킨과 적으로 마주하게 됐다. 베르바토프는 첫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즈의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베르바토프가 점차 맨유에 적응해나갔다. 7R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전에서 득점을 성공한 뒤 자리를 잡아갔다. FA컵 4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팀 패배에 원흉이 된 것이 아쉬웠으나, 이적 첫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팀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9/10시즌은 베르바토프에게 좋지 못 했다. 당시 베르바토프는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2골을 기록했고, 다른 대회들에서는 득점을 하지 못 했다. 이전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득점은 2골이 더 나왔으나, 전체 득점은 2골이 하락했다.

절치부심하고 맞이한 2010/11시즌은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시즌이었다. 베르바토프는 5R 리버풀전 해트트릭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특히 당시 오버헤드킥 득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또한 15R 블랙번전에서는 무려 5골을 득점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베르바토프는 해당 시즌 20골로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사실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베르바토프와 맨유 간의 균열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베르바토프의 득점은 몰아치기가 주라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또한 당시 빠른 축구를 구사하던 맨유였는데, 베르바토프가 템포를 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여러 비판과 동시에 베르바토프도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1/12시즌부터는 웨인 루니,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대니 웰백에 밀려 출전 기회가 극히 줄어들었다. 교체로 출전해서도 이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에 결국 베르바토프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게 됐다..

그가 새롭게 합류한 팀은 풀럼 FC였다. 베르바토프는 이적 바로 다음날에 펼쳐진 3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 출전하며 데뷔했다. 4R WBA과의 경기에서 홈 데뷔전 치렀는데 멀티골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했다. 베르바토프는 풀럼 이적 첫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5골로 맹위를 떨친다.

다만, 경기 외적으로 베르바토프가 안 좋은 모습을 노출됐다. 베르바토프는 토트넘이나 맨유 시절에도 팀 동료들에 곧잘 짜증을 내는 선수였다. 하지만 풀럼에 와서 그 빈도가 늘어 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베르바토프는 19R 풀럼전에서 득점 이후 내의에 적은 문구를 보여줬다. 문구엔 “차분히 나한테 패스만 해”라고 적혀있었다. 베르바토프는 이 일로 경고를 받았는데, 당시 감독인 마틴 욜이 이 행동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다. 미디어도 오만한 행동이며, 경고를 받은 것 자체도 좋지 못 했다며 거들었다.

이런 면들은 팀 성적의 하락과 함께 베르바토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베르바토프의 풀럼 두 번째 시즌인 2013/14시즌 베르바토프의 활약이 저조했다. 프리미어리그만 해도 17경기 4골에 그쳤다.

이 시기 베르바토프는 경기 내외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베르바토프는 1월 AS 모나코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풀럼은 베르바토프가 떠난 뒤 후반기에도 반등에 실패하며 강등됐다. 팬들은 강등 이후 베르바토프에 평균 이상의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베르바토프는 모나코에서 두 시즌 간 활약했고, 그리스의 PAOK로 이적하여 한 시즌 간 뛰었다. 베르바토프는 그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적에 실패했고, 현재는 자유 계약 상태로 남아있다.

◇EPL 최고의 순간

베르바토프는 프리미어리그 생활 동안 많은 골을 득점한 경기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의 우아함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는 2008/09시즌 9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당시 베르바토프의 소속팀이었던 맨유는 전반 14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득점으로 1-0 앞서고 있었다. 전반 30분 안데르손이 왼쪽 측면으로 패스를 밀어줬다. 베르바토프는 골라인으로 나가는 공을 살려내며 유려한 턴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제임스 콜린스가 완벽히 벗겨졌다. 베르바토프가 이어 크로스를 했고 호날두가 마무리지었다. 맨유는 이날 베르바토프와 호날두의 활약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뒀다.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공격수였다. 빠른 스피드는 지니지 못 했지만 패스, 슛, 헤더, 연계 등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베르바토프의 압도적인 장점은 바로 볼터치였다. 어느 세기, 어느 방향에서 공이 와도 완벽히 몸 앞으로 잡아둘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프로필

이름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국적 - 불가리아

생년월일 - 1981년 1월 30일

신장 및 체중 - 189cm, 79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78경기 48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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