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EPL Nostalgia] '크레이지 갱단의 중심' 비니 존스 <23>

[EPL Nostalgia] '크레이지 갱단의 중심' 비니 존스 <23>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4.03 17:41
  • 수정 2017.04.03 17:51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크레이지 갱단의 중심' 비니 존스 <23>

지난 1일(한국 시간) 리버풀 FC와 에버턴 FC 간의 머지사이드 더비가 펼쳐졌다. 두 팀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경기를 펼친 것은 좋았으나, 거친 플레이들이 나오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중 특히 에버턴의 로스 바클리는 엠레 찬, 필리페 쿠티뉴를 향한 좋지 못 한 태클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바클리의 이런 모습은 팬들로 하여금 과거 한 선수의 플레이를 떠오르게 했다.

존스는 만 19세에 웰드스톤에서 1군 생활을 시작했다. 스웨덴 리그의 IFK 홀름스문트에서도 뛰는 등 다사다난한 커리어 초기를 보냈다. 존스는 1986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AFC 윔블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존스는 윔블던에서 3년 간 활약하며 족적을 남겼다. 특히 1988년에는 윔블던이 FA컵 우승을 하는 데 기여했다. 우승하던 시기 윔블던은 거칠고 마초적인 플레이로 인해 ‘크레이지 갱단’이라 불렸는데, 존스가 역시나 그 중심이었다. 이후 존스는 리즈 유나이티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첼시 FC 등을 돌며 활약했다.

이 시기에도 존스는 거친 플레이로 계속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87년에 상대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폴 개스코인의 사타구니를 움켜쥐는 사진이 찍혀 뭇매를 맞았다. 1991/92시즌 FA컵 5라운드 셰필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경기 시작 3초 만에 경고를 받으며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92/93시즌은 잉글랜드 1부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새로 출범하는 시즌이었다. 존스 역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들을 잠재우려는 듯, 매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존스의 전 소속팀이자, 존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겼던 윔블던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시즌 시작 후 1승 2무 4패에 그쳤다. 힘든 시기를 겪던 윔블던 보드진에 존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윔블던이 첼시에 이적 제의를 했고 존스는 깜짝 복귀를 했다. 다시 한 번 크레이지 갱단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런데 존스가 친정팀에 복귀 후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당시 존스는 ‘Soccer's Hard Men'이라는 비디오의 진행자를 맡았다. 이 비디오는 존스 본인을 포함하여 잭 찰튼, 스티브 맥마흔 등 전, 현대 스타들의 경기장 내 거친 플레이를 모아놓은 비디오였다. 이 비디오에는 신인 선수들에게 거친 플레이를 종용하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당연히 세간의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당시 윔블던 단장이었던 샘 함만조차도 “존스는 뒤는 생각 못 하는 모기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존스는 이 사건으로 인해 FA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축구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약 2,500만원의 벌금과 집행 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집행 유예 기간에 물의를 빚게 되면 6개월 출전 금지를 받게 되는 엄중한 징계였다.

축구 외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내에서만큼은 존스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헌신적으로 공을 끊어내고 상대 진영으로 진격했다. 패스를 적재적소에 전달하는 역할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윔블던은 프리미어리그 원년 시즌을 12위라는 무난한 성적으로 마쳤다.

1993/94시즌 존스는 조 키니어 감독에 의해 존 스칼스를 대체하는 주장으로 선임됐다. 존스는 주장 선임 이후 남다른 책임감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에 윔블던은 1993/94시즌 6위라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최고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에도 존스는 윔블던을 위해 헌신했다. 1996/97시즌에는 리그 8위와 FA컵 4강, 리그컵 4강 진출을 이끌며 또 한 번의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24R에서 아스널 전 결승골을 넣기도 했다. 그 사이 단 하나 흠이 있다면 1993/94시즌 FA컵 5라운드에서 에릭 칸토나를 향한 깊은 태클로 구설수에 오른 정도였다.

1997/98시즌까지 존스의 활약은 계속 됐다. 당시 만 33세였던 존스는 몸 관리에 한다면 몇 시즌 간은 충분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2부 리그에 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가 지도자를 생각하는 존스에게 플레잉 코치직을 제안하며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 존스는 결국 QPR행을 택하며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정리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QPR과의 계약이 끝난 이후, 지도자로서의 생활을 이어간 것이 아닌 영화계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존스는 영화계에 몸을 담은 뒤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1996/97시즌 프리미어리그 24R 윔블던은 아스널 원정을 떠났다. 경기전 윔블던은 4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부진에 빠져있었다. 전반 21분 닐 아들리가 띄워준 공이 골문 앞으로 향했다. 존스가 발리슛한 공이 득점이 됐다. 이 것이 결승골이 되어 윔블던은 5경기 만에 1-0 짜릿한 승리를 맛 봤다.

◇플레이 스타일

거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파이팅이 넘쳤지만, 위험한 플레이로 팀에 불안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래도 활동량이 넓었고 미드필더 위치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간간히 상대 진영으로 공격에 나서면 위협적인 옵션이 됐다.

◇프로필

이름 - 비니 존스

국적 - 웨일즈

생년월일 - 1965년 1월 5일

신장 및 체중 - 188cm, 91kg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9경기

sports@stnsports.co.kr

저작권자 © ST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단영역

매체정보

  • (주)STN미디어(방송국)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419-2 부평테크노타워 8층
  • 대표전화 : 1599-1242
  • 팩스 : 070-7469-0707
  • 법인명 : (주)에스티엔미디어
  • 채널번호 : 지니 TV(131번) LG 유플러스 TV(125번) 딜라이브(236번)
  • 대표이사 : 이강영
  • 보도본부장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주)STN뉴스(신문사) : (0723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23 (정원빌딩) 10층
  • 대표전화 : 02-761-2001
  • 팩스 : 02-761-2009
  • 법인명 : (주)에스티엔뉴스
  • 제호 : STN 뉴스
  • 등록번호 : 인천 아 01645
  • 등록일 : 2009-09-04
  • 발행일 : 2009-09-04
  • 대표이사 : 유정우
  • 발행·편집인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Copyright © 2024 STN 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ports@stnsports.co.kr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