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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선수 겸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 <19>

[EPL Nostalgia] '선수 겸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 <19>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3.20 11:09
  • 수정 2017.03.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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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선수 겸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 <19>

지난 2013/14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데이빗 모예스 감독을 경질한 뒤 팀을 라이언 긱스에게 임시로 맡겼다. 긱스는 해당 시즌 선수 등록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긱스는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잊지 못 할 기억을 남겼다.

긱스는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을 지휘했다. 때론 자신이 직접 출전하여 필드를 누비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프리미어리그 역사 상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선수 겸 감독으로 EPL 이달의 감독상도 수상한 적이 있는 이 인물도 있었다.

피어스의 초반 커리어는 순탄치 않은 편이었다. 유스 시절 퀸즈 파크 레인저스 트라이얼에서 탈락했고, 헐 시티에 입단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별 수 없이 논 리그의 아마추어 팀인 윌드스톤에 입단하여 5시즌 간 뛰었다.

그런 피어스에게 변화가 생켰다. 당시 1부 리그 코벤트리 시티의 감독이었던 바비 가울드 감독이 그를 영입한 것이다. 가울드는 피어스의 전투적인 태도에 반해 영입을 결정했고, 이는 효과를 봤다. 코벤트리에서 성공적인 2년을 보낸 뒤, 피어스는 전설적인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 눈에 들었고, 코벤트리 동료인 이안 버터워스와 함께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입성 초기엔 잠시 헤맸지만, 피어스는 노팅엄에서 자리를 잡았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까지 피어스의 축구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1989년 힐스버러 참사를 목격한 선수이기도 했고, 1991년 팀의 FA컵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1992/93시즌 출범한 프리미어리그와 피어스 간의 초기 궁합은 좋지 못 했다. 팀의 주장이었던 피어스는 해당 시즌 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노팅엄은 강등됐다. 그러나 피어스는 팀과의 의리를 지키며 남았고, 바로 승격에 성공하며 1994/95시즌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했다.

다시 복귀한 1994/95시즌, 노팅엄과 피어스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승격팀이었던 노팅엄은 개막 후 11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결국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승격팀의 돌풍이었다. 중심에 피어스가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다음 시즌까지는 노팅엄이 무난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6/97시즌이 문제였다. 노팅엄은 1R 코벤트리 시티전에서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케빈 켐벨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0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이후 16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쳤다. 당연히 12월 초순 팀은 최하위였다.

이로 인해 당시 감독이었던 프랑크 클락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됐다. 노팅엄 포레스트 보드진은 팀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피어스를 임시 감독으로 발탁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의 첫 경기는 18R 아스널 FC전이었다.

피어스는 주전 골키퍼 마크 크로스비의 이름을 출전 명단에 빼놓았었다. 부인이 이를 알려줬던 것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정하는 등 초보 감독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알프 잉게 할란드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는 등 1월 한 달 간 감독으로 승승장구했고, EPL 1월의 감독상도 수상했다.

이후 3월부터 데이브 바셋에게 지휘봉을 넘겨줬지만, 오히려 그 것이 노팅엄에는 악재가 되고 말았다. 팀은 좋지 못 한 경기력을 거듭 보이며 회생에 실패했고 강등됐다. 노팅엄에서 두 번째 강등을 맞은 피어스는 이번에는 이적을 택했다.

피어스가 택한 곳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였다. 케니 달글리쉬 감독 하 뉴캐슬은 존 반스, 이안 러쉬 등 베테랑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피어스는 뉴캐슬로 가면 자신이 좀 더 편하게 활약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초기는 좋았다. 첫 시즌 FA컵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도 경험했다.

하지만 1998/99시즌 달글리쉬 감독이 경질되고 루드 굴리트 감독이 오면서 피어스의 뉴캐슬 생활은 악몽으로 치달았다. 굴리트 감독은 피어스, 반스, 롭 리 등 팀내 베테랑들과 불화를 겪었다. 세 선수는 굴리트 감독에 의해 리저브 경기를 뛰는 수모도 겪었다.

때문에 피어스는 다시 한 번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였다. 그는 2시즌 간 모든 대회 걸쳐 50경기를 소화하면서, 활약했다.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이다. 이후 케빈 키건 감독 하의 2부 리그 맨체스터 시티서 한 시즌 간 더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EPL 최고의 순간

1994/95시즌 노팅엄이 돌풍을 쓰고 있었으나, 시즌 중반 부진에 빠졌다. 27라운드 리버풀 FC전부터 31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전까지 무승을 기록 중이었다. 위기의 시기 32R에서 에버턴 FC와 맞붙었다.

이번에도 어려운 경기가 펼쳐졌다. 노팅엄이 전반 19분 스탄 콜리모어의 득점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에버턴이 스튜어트 바로우의 득점으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후반 9분 피어스가 등장했다. 피어스는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득점을 해냈다. 노팅엄은 이 득점에 힘입어 6경기만에 승리했고, 이후 10경기에서 8승 2무를 기록하며 3위에 오르는 쾌거를 만들었다.

◇플레이 스타일

공수 겸장의 풀백이었다. 오버래핑 능력도 훌륭했고, 악착같은 수비에도 소질을 보였다. 플레이 하나, 하나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인해 싸이코, 즉 미치광이로 불리기도 했다. 매튜 르 티시에를 비롯 프리미어리그 레전드 여러 명에게 상대하기 무서운 실력의 선수로 꼽혔다. 뛰어난 킥 능력은 덤이었다.

◇프로필

이름 - 스튜어트 피어스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62년 4월 24일

신장 및 체중 - 178cm, 80kg

포지션 - 레프트백

국가대표 경력 - 78경기 5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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