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N뉴스] 이상완 기자 = 변칙적인 '백스리' 수비 전술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수비수 김영권(34·울산 HD)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0년 8월 조광래 전 감독 체제 하에서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김영권은 14년간 부동의 센터백으로 중요한 고비 때마다 굵직한 역할을 맡아왔다.
월드컵은 개인 통산 3회(2014년·2018년·2022년) 출전했고, 아시안컵도 2015년 호주,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번 대회까지 3회 출전에 빛난다.
현재(31일) 기준으로 A매치 107경기(7득점)에 나서 국제축구연맹(FIFA) 센츄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에 이름을 올렸다. 수비수이기 때문에 골은 많지 않지만 위기에서는 언제나 김영권의 인상적인 득점포가 있었다.
러시아 월드컵 때에는 조별리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가운데 자존심을 걸고 '세계 최강' 독일전에 나서 선제골로 승리의 기폭제를 만들었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도 선제골로 16강 진출 역사를 만드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가대표를 지내는 동안 조광래·최강희·홍명보·신태용·울리 슈틸리케(독일)·신태용·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까지 총 8명의 지도자를 거쳤지만 김영권의 자리는 굳건했다.
이번 대회는 남달랐다. 4백 전술을 구사하는 클린스만 감독은 김영권보다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정승현(울산 HD) 조합을 선호했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초기 때 선발 2경기 나선 이후 주로 벤치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에도 주전보다는 백업 역할이 컸다. 특히 소속팀 후배 정승현이 주전 선발 출전할 때에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럼에도 김영권은 꿋꿋했다.
늘 '베스트 11'만 사용하는 클린스만 감독 성향상 벤치나 교체 멤버로 뛸 것으로 예상됐으나 3차전 말레이시아전을 앞두고 변수가 발생한 것. 좌측 풀백 이기제(수원삼성) 김진수(전북현대)의 부재로 포백 라인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다득점이 필수였던 상황에서 공중 헤딩 장악력과 공격력이 좋은 김영권의 존재도 필수였다. 말레이시아전에서 보이지 않는 실책에 실점으로 이어지는 플레이가 있어 아쉬움을 남겼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에서는 진가를 발휘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무모할 정도로 파격적인 백스리를 사용했다. 김영권-김민재-정승현으로 구성한 것이다. 국가대표팀에서 백스리로 경기를 치른 것은 지난 2022년 11월 11일 아이슬란드와 친선전 이후 약 447일 만이다.
당시 벤투 감독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실험 차원에서 사용했다가 결국은 포백으로 회귀했던 적이 있다. 이를 클린스만 감독이 중요한 순간에 카드를 꺼냈는데 완전한 실패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우디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정비가 덜 된 수비진을 기습적으로 성공해 자칫 흔들릴 수 있었지만 백스리 경험이 있는 김영권이 안정적으로 라인을 챙기면서 추가 실점을 막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득점 없는 연장전을 지나 승부차기에서도 김영권의 강심장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사우디 선축으로 2-1의 상황에서 두 번째 키커로 나선 김영권은 낮고 빠른 과감한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김영권의 성공 이후 사우디는 세 번째, 네 번째 키커가 연달아 실축해 패하고 말았다. 김영권은 어설픈 백스리 전술에서 중심을 잡아주면서 대역전승에 있어 '숨은 일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영권은 경기가 끝나고 "스리백이 익수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준비를 최대한 했다. 조별리그와 달리 쉽게 들어간 실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어린 선수들을 도와주고, 더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고참 선수로서 한 팀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중요한 것 같다"고 울림있는 말을 남겼다.
한국은 내달 3일 자정 30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호주와 아시안컵 8강전을 치른다.
STN뉴스=이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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