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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왕과 쿵푸킥 사이' 에릭 칸토나 - 111

[EPL Nostalgia] '왕과 쿵푸킥 사이' 에릭 칸토나 - 111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18.03.13 21:37
  • 수정 2018.03.14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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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칸토나
에릭 칸토나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왕과 쿵푸킥 사이' 에릭 칸토나 - <111>

지난 11일 브라이턴 호브 앤 앨비언과 아스널 FC와의 EPL 30라운드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에서 외질은 어시스트 한 개를 추가했다. 같은 날 축구 통계사이트 <옵타>에 따르면 외질은 141경기만에 50어시스트를 기록해 143경기만에 50어시스트를 기록한 이 선수의 기록을 넘었다. 비록 기록은 깨졌지만 이 선수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칸토나는 1966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골키퍼로도 활약하곤 했지만, 그의 필드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을 숨길 수 없었다. 칸토나는 재능을 인정받아 AJ 옥세르 유스를 거쳐 1군에 데뷔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는 자체로도 많은 주목을 받은 그는 1985년 FC 마르티그 임대 후 한층 성장했다. 이후 옥세르에 복귀한 그는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나왔다. 팀 동료와 불화가 생겼다. 칸토나는 팀 동료인 골키퍼 브루노 말티니와 경기 후 말다툼을 했고 1987년 그의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프랑스 리그에 있던 당시 칸토나는 그야말로 악동이었다. 칸토나는 말티니와의 마찰 이 외에도 낭트 FC의 미하엘 델 자카리안에게 깊은 태클을 해 3개월 출장정지를 받기도 했고 관중에게 공을 차 징계를 받기도 한 사고뭉치였다.

칸토나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던 마르세유는 지롱댕 드 보르도로 그를 임대보냈다. 칸토나는 임대 기간 때에도 장 클라우드 레몰과 싸웠다. 이를 로랑 블랑과 카를로스 발데레마가 말린 일은 유명하다. 그럼에도 마르세유가 그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임대 시절에도 쿠프 데 프랑스 대회를 우승을 견인할만큼 칸토나의 실력이 출중해서였다.

하지만 안팎으로 계속되는 기행에 마르세유도 그를 놓았다. 칸토나는 프란츠 베켄바워 밑에서 성정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마르세유는 칸토나를 님 올림피크로 이적시켰다. 그러나 칸토나는 그 곳에서도 심판한테 공을 차는 기행으로 프랑스 축구계에서 지탄받는 존재가 됐다.

프랑스 축구계에서 지탄받는 존재가 된 그를 프랑스 국가대표팀 코치 미셸 플라티니가 애석하게 여겼다. 플라티니는 칸토나에게 영국행을 권유했다. 제라드 훌리에와 그의 상담사 역시 영국행을 추천했다. 이로 인해 칸토나는 영국으로 떠나게 됐다.

사실 칸토나의 이적이 유력했던 팀은 리버풀이었다. 플라티니가 1991년 리버풀의 감독 그래엄 수네스에게 칸토나의 영입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리버풀에는 이안 러쉬, 딘 샌더스, 로니 로젠탈 등 준수한 공격수가 가득했다. 여기에 폴 스튜어트 등도 나중에 합류할 정도였다. 수네스는 칸토나 영입에 열을 올리지 않았고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행을 택했다.

칸토나는 1991년 리즈 합류 후 영국 축구계에 태풍을 몰고왔다. 칸토나는 연일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리즈의 17년 만의 리그 제패에 기여했다.

칸토나가 리즈를 우승시킨 바로 다음해 프리미어리그를 뒤흔드는 이적이 성사됐다. 칸토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됐다. 이 이적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할 팀이 바뀌게 됐다.

칸토나가 리즈의 앙숙 클럽인 맨유로 이적할 이유는 없었다. 칸토나 이적은 리즈가 데니스 어윈을 영입하기 위해 나서면서 시작됐다. 리즈 회장 빌 포허비가 맨유 회장 마틴 에드워즈에게 데니스 어윈 영입이 가능한 지 물었다. 에드워즈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어윈을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칸토나 이적이 가능한 지 물었다. 당시 맨유는 데이빗 허스트 등 정상급 공격수들에게 이적 제의를 했으나 계속 실패한 터였다. 칸토나는 당시 리즈 감독인 하워드 윌킨슨과 불화를 겪고 있었고 이적에 동의하면서 일이 성사됐다.

칸토나는 맨유 입성 후 놀랄만한 활약을 펼쳤다. 이전 시즌 득점력 빈곤으로 고민했던 맨유지만 칸토나 합류 이후에는 팀이 180도 달라졌다. 칸토나는 브라이언 맥클레어, 마크 휴즈 등과 호흡을 맞췄는데, 공격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을 오가며 팀에 숨을 불어넣었다.

칸토나의 활약에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초대 왕좌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칸토나는 팬들로부터 ‘맨유의 왕’으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는 충격적인 1994 월드컵 예선 탈락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클럽에서는 리그를 뒤흔드는 활약을 이어갔다.

칸토나는 1993/94시즌에도 남다른 활약을 펼쳤다. 모든 대회에서 25골을 폭발시키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FA컵 더블을 이뤄냈다. 또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상복도 터졌다. 칸토나는 이 시즌부터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등의 등번호인 7번을 입고 활약하며 등번호의 가치를 증대시켰다.

맨유에서 맞은 세 번째 시즌인 1994/95시즌 칸토나는 리그 3연패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시작도 순조로웠다. 그는 시즌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채리티 쉴드 경기에서 득점을 통해 우승을 이끌었다. 시즌 절반이 지난 1월 당시 맨유의 우승을 예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995년 1월 25일 일이 터졌다. 당시 맨유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맞대결을 펼쳤다. 칸토나는 팰리스의 수비수 리차드 쇼의 악착같은 수비에 짜증이 났다. 칸토나는 그를 가격해 퇴장당했다. 그러자 팰리스 홈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팰리스 팬 중 한 명인 매튜 시몬스가 화난 칸토나에게 기름을 부었다. 시몬스는 칸토나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을 했고 칸토나는 참지 못했다. 관중에게 쿵푸킥을 했다.

전후 사정이 있었다하더라도 관중에게 쿵푸킥을 날린 일로 그는 징게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칸토나는 9개월의 출장 금지를 당하는 것은 물론 120시간의 사회봉사 판결을 받았다. 칸토나의 징게 이후 팀의 중심을 잃은 맨유는 급격히 흔들렸고 결국 블랙번에게 리그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사실 장기 징계로 인해 칸토나는 팀을 떠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만류로 잔류했다. 칸토나는 1995년 10월 경기장에 들어서며 왕의 복귀를 알렸다. 칸토나의 복귀전은 리버풀 FC와의 노스웨스트 더비였는데 그는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며 건재를 알렸다.

칸토나는 이후 AFC 윔블던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는 등 맹활약으로 팀의 리그 재탈환을 견인했다. 또한 이 시즌 FA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멋진 결승골을 터트리며 다시 한 번 더블을 만들었다.

1996/97시즌 칸토나는 맨유의 주장으로 임명됐다. 칸토나는 나이가 어린 퍼기의 아이들(데이빗 베컴, 게리 네빌 등)의 이정표가 돼 주며 팀을 이끌었다. 칸토나는 환상적인 활약으로 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칸토나는 우승 이후 최정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EPL 5시즌 중 징계 한 시즌 제외 4시즌 우승. 이 것이 그가 남긴 성적이다.

◇EPL 최고의 순간

1995/96시즌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에서 맨유와 선덜랜드 AFC가 맞붙었다. 4-0으로 앞선 후반 34분 에릭 칸토나는 리오넬 페레스 골키퍼를 꼼짝 못하게 하는 로빙슛으로 경기를 결정지었다. 득점 이후 옷깃을 세우고 주변을 바라보는 칸토나의 셀레브레이션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잡았다.

◇플레이 스타일

큰 체격으로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에 능한 선수였다. 발 기술과 패스 기술이 매우 뛰어나 답답한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로 강한 체중을 담은 중거리슛, 로빙슛, 감아차기에 모두 능력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득점을 만들어냈다.

◇프로필

이름 – 에릭 칸토나

국적 – 프랑스

생년월일 - 1966년 5월 24일

신장 및 체중 - 188cm, 80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45경기 20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1992/93시즌~1996/97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2/93시즌~1996/97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마르카> - Eric Cantona, un genio indomable que estuvo a punto de retirarse con 25 años

<데일리 미러> - I sold Eric Cantona to Manchester United! Former Leeds managing director Bill Fotherby on the phone call that changed English football

<레퀴프> - Le jour où Cantona a disjoncté

<미러> - Remembering what Sir Alex Ferguson said about Eric Cantona's infamous kung-fu kick against Crystal Palace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 Cantona, i 50 anni del genio ribelle del calcio

<더 선> - Eric Cantona revolutionised Manchester United from the day he arrived… Mark Hughes tells the inside story of life alongside the genius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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