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가각!” 강광배의 인생 바친 희생, 윤성빈 金으로 결실 맺다
“가가가각!” 강광배의 인생 바친 희생, 윤성빈 金으로 결실 맺다
  • 이형주 기자
  • 승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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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배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가가가각!”

중년이 된 강광배(44)는 윤성빈(23)의 스켈레톤 4차 주행이 시작되자 “가가가각”을 외쳤다. 그 외침에는 절실함을 넘어 처절함까지 느껴졌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인 강광배는 자신이 인생을 바친 그 무대에서 후배의 금메달을 염원했다.

◇스키 선수가 되고 싶던 강광배, 부상으로 좌절하다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이자 MBC 해설위원. 직책만 보면 강광배가 평탄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6년 전 강광배는 큰 꿈을 가진 청춘이었다. 강광배는 전주대학교 체육학과 출신으로 알파인 스키 선수 출신이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파인 스키 선수로 대성하는 것을 희망했고 그의 계획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대학교 3학년 때 좌절되고 만다. 대학교 3학년 때 부상을 당한 그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장애 5급 판정을 받는다. 알파인 스키는 무릎을 이용해 몸을 지탱하고, 방향 전환을 해야하는 종목. 강광배에게 부상은 선수로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강광배는 부상에도 포기 하지 않고 스키 선수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부상 당한 무릎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광배는 크게 낙담했다.

강광배
강광배

◇낙담해있던 강광배, 루지를 만나다

부상으로 상심이 가득하던 강광배에게 하나의 빛이 비췄다. 부상 중 강광배는 루지 강습회에 참가하게 됐다. 루지는 썰매 종목의 하나로서 무릎을 쓰지 않아도 되는 종목이다. 강광배에게 다시 희망이 생겼다.

이후 강광배는 루지 연습에 매진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2위를 기록, 태극 마크를 달게 됐다. 강광배는 동료들과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대회에 나가 31위를 기록했다. 썰매 불모지에서 한 줄기 희망의 꽃이 피어오른 것이다.

하지만 강광배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광배는 루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전지 훈련을 떠났다. 하지만 훈련 중 강광배는 부상을 당하게 됐다. 이후 강광배는 대한루지연맹으로부터 제명당한다. 강광배는 제명의 이유를 “세대 교체”로 들었다고 회고한다.

◇강광배가 마티아스 구겐베르거를 보고 만감이 교차한 이유는?

강광배는 평창 올핌픽 스켈레톤 4차 시기에서 오스트리아의 마티아스 구겐베르거를 보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있다. 그 구텐베르그가 자신을 벼랑 끝에서 구해준 마리오 구겐베르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강광배가 중계 당시 마티아스 구겐베르거를 “한국에 스켈레톤을 전한 인물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루지 대표팀에서 제명 이후 강광배는 시름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마리오 구겐베르버의 권유로 스켈레톤으로 전향하게 됐다. 이후 강광배는 1999년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강광배는 또 한 번 올림픽 무대에도 서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대회에서 39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대회에서 20위의 성적을 올렸다.

◇‘무한도전’ 강광배, 봅슬레이에도 발을 내딛다

하지만 강광배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봅슬레이 종목에도 도전했다. 당시 한국의 봅슬레이 환경은 열악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강광배는 썰매조차도 없어 중고 썰매를 빌려쓰는 실정이었다.

강광배는 올림픽 무대를 준비하면서도 봅슬레이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강광배는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가 봅슬레이를 알리기도 했다.

결국 강광배는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대회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 나가 19위에 올랐다. 비록 메달은 아니었지만 세계 최초로 썰매 3종목에서 올핌픽에 나간 선수가 됐다.

윤성빈
윤성빈

◇지도자로 변신한 강광배, 후진 양성에 심혈

2010년 선수로서의 은퇴를 선언한 그지만 썰매와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강광배는 썰매 종목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고 동분서주했다. 괜찮은 재목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썰매 쪽에 뛰어들게끔 유도했다.

윤성빈도 강광배의 지도 아래 월드 클래스의 선수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사인 김영태 씨와 친분이 있었던 강광배는 윤성빈을 알게 됐다. 재능을 알아본 강광배는 윤성빈을 선수로서 키워냈다.

강광배는 홀어머니 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윤성빈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지도했다. 강광배의 이런 노력에 윤성빈은 차근차근 성장해갔다.

강광배의 꿈을 이뤄준 윤성빈
강광배의 꿈을 이뤄준 윤성빈

◇亞 최초의 스켈레톤 금, 강광배의 평생 걸친 헌신 속에서 피어났다

강광배가 평생을 걸쳐 썰매 종목에 쏟았던 헌신은 마침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서 빛을 봤다. 강광배 아래서 성장한 윤성빈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6일 오전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1인승에서 윤성빈은 1~4차 레이스 합계 3분20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강광배는 윤성빈의 금메달에 그저 만족했다. 강광배는 윤성빈의 레이스 후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척박한 썰매 불모지에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꽃이 피어났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강광배의 평생을 걸친 희생이 있었다. 한 남자의 헌신으로 인해 찬란한 꽃이 피어났다.

사진=뉴시스

total87910@stn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