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포로 로마노] 유령도시에 있었던 에릭센, 결국 클래스 증명
[이형주의 포로 로마노] 유령도시에 있었던 에릭센, 결국 클래스 증명
  • 이형주 기자
  • 승인 2021.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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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 밀란 공격형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
인터 밀란 공격형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축구계 포로 로마노가 이곳에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포로 로마노가 존재했다.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포로 로마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시설들이 밀집된 장소였다. 당시 사람들은 포로 로마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포로 로마노처럼 STN 스포츠가 세리에A 관련 담론을 전하는 연재물을 준비했다.

포로 로마노 유적지
포로 로마노 유적지

-[이형주의 포로 로마노], 69번째 이야기: 유령도시에 있었던 에릭센, 결국 클래스 증명

크리스티안 에릭센(29)이 결국은 클래스를 증명했다. 

인터 밀란은 2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크로토네에 위치한 스타디오 에치오 시다에서 열린 2020/21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34라운드 FC 크로토네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인테르는 리그 2경기 만에 승리했고 크로토네는 리그 2연승에 실패했다. 

인테르는 이날 크로토네전 승리로 우승까지 승점 1점만을 남겨두게 됐다. 잔여 4경기서 승점 딱 1점만 벌어들이면 된다.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2위 아탈란타 BC가 잔여 4경기를 전승으로 마무리짓지 못하면 인테르의 우승이다. 

인테르를 사실상 우승으로 견인하는 승리를 만든 이는 에릭센이었다. 에릭센은 체력 안배 차 선발에서 제외됐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후반 20분 투입됐다. 에릭센은 투입 직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대 진영을 누볐고 결국 후반 23분 강력한 중거리슛 득점으로 골망을 갈랐다. 인테르는 에릭센의 결승골 포함 맹활약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에릭센은 세리에 A 우승 멤버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 직전이다. 딱 1년 전 인생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것을 감안하면, 상전벽해 수준의 변화다. 말도 통하지 않고 사람 없는 유령도시에 혈혈단신으로 버텨야 한다면 어떨까. 끔찍할 것이다. 딱 1년 전 에릭센이 처한 상황이 그러했다.

2020년 겨울 이적 시장에 인테르에 합류한 에릭센이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락다운(봉쇄령)이 내려졌다. 특히 인테르의 연고지 밀라노가 있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은 코로나19가 가장 횡횡하던 지역이었다. 식료품 구입, 약 구입 등 꼭 필요한 이동을 제외하고는 이동이 전면 금지됐다. 세계 최고 관광지 중 하나인 밀라노가 그 때만큼은 유령도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에릭센이 거의 혈혈단신으로 남겨졌다. 오래 뛰던 토트넘에서 새로운 인테르로 합류한 뒤 팀 적응도 하지 못한 때였다. 이탈리아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렇게 남겨졌다. 물론 구단 직원들, 같은 연고 AC 밀란의 대표팀 동료 시몬 키예르 등이 에릭센을 도왔지만 불편함이 있었다. 물론 그의 막대한 연봉으로 다른 근로자들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도저히 좋은 감정을 갖기 힘든 상황이었다.

에릭센은 토트넘 말기 주축에서 제외돼 플레이 타임이 적었다. 여기에 적응 없이 락다운 기간으로 몇 달을 날렸다. 리그가 재개되고 에릭센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올 시즌 초반까지도 그런 모습은 이어졌고 에릭센은 팀을 떠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릭센은 그러나 팀에 남았다. 자신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점차 환경에도 적응했고, 플레이 타임이 쌓여가면서 제 컨디션도 찾기 시작했다. 

에릭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한 시작점 같았던 2월 세리에 A 20라운드 베네벤토 칼초전
에릭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한 시작점 같았던 2월 세리에 A 20라운드 베네벤토 칼초전

2월 초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그를 3-5-2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플레이 타임은 더 늘었다. 이제 그는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서브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고 인테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최근 크리스티안 에릭센-마르첼로 브로조비치-니콜로 바렐라가 인테르가 낼 수 있는 최고 미드필더진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1년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는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플레이 타임이 적은 상황에서 유령 도시 속 남겨졌던 에릭센은 좋은 폼을 보이지 못했다. 팀을 떠나는 것도 심각히 고려했던 그였지만, 잔류했다. 이후 환경에 적응하고, 팀에 녹아든 그는 다시 클래스를 증명했다. 주변 환경 등으로 폼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클래스는 떨어지기 힘들다. 에릭센이 자신을 통해 해당 명언을 다시 한 번 인증했다.  

사진=뉴시스/AP, 이형주 기자(이탈리아 로마/포로 로마노)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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