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에버튼의 심장' 레이튼 베인스 – 182
[EPL Nostalgia] '에버튼의 심장' 레이튼 베인스 – 182
  • 이형주 기자
  • 승인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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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튼 베인스(사진 맨 앞)
레이튼 베인스(사진 맨 앞)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에버튼의 심장' 레이튼 베인스 - <182>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가져온 해악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스포츠 팬인 우리들에게 미친 해악 중 하나는 팀내 레전드 선수들을 박수갈채 없이 보내게 됐다는 점이다. 이 선수 역시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지만 무관중 경기로 인해 동료들과 인사만 나누며 조촐한 마무리를 하게 됐다. 

베인스는 1984년 리버풀 근교의 커크비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에버튼 FC의 팬이었던 그는 유스팀에 입단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하지만 1군 데뷔에는 실패했고 위건 어슬래틱 유스로 옮긴 뒤 그 곳에서 데뷔에 성공했다. 

박지성, 이영표 등 한국인 1세대 선수들이 활약하던 당시 EPL에서 활동하던 위건이다. 이에 EPL 클럽의 느낌이 강하지만, 베인스가 데뷔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4부리그에 머물던 클럽이 위건이었다. 

하지만 팀이 하부리그에 속해있는 것은 오히려 베인스에게 큰 도움이 됐다. 팀 전력이 강하지 않은 덕에 2002년 위건 1군 데뷔 후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유망주 시절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실력이 급성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위건은 차근차근 3부, 2부, 1부 승격까지 내달렸다. 베인스의 경우 팀이 챔피언십(2부리그)에 있던 2004/05시즌 42경기나 소화하며 위건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2005/06시즌 마침내 소속팀 위건과 함께 1부리그인 EPL로 입성했다.

베인스가 훗날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회고하기를 그는 본인이 EPL에서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베인스는 챔피언십서 승격 셀레브레이션 당시 '이제 난 어디로 가야할까? EPL에 가면 많은 시간을 벤치 혹은 리저브에서 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것이 챔피언십의 준척급 자원이 EPL서 고전하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하지만 베인스의 경우는 아니었다. 베인스는 EPL 입성 이후에도 특유의 활동량과 킥력으로 EPL 무대를 수놓았다. 

베인스는 위건에서 EPL 두 시즌 동안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를 통해 위건의 리그 돌풍에 공헌했을 뿐 아니라 2005/06시즌 칼링컵(리그컵) 준우승에도 기여했다. 

레프트백 베인스와 라이트백 파스칼 심봉다는 위건의 돌풍을 만들면서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다. 복수 클럽의 제의가 폭발했다. 고심하던 베인스였지만, 그의 선택은 너무도 쉬웠다. 어릴적부터 응원해오던 드림클럽 에버튼이 그에게 이적제의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베인스는 선덜랜드 AFC 등 복수 클럽의 제의를 거절하고 에버튼에 합류했다. 영국 언론 BBC에 따르면 이적료는 500만 파운드에 100만 파운드 정도의 옵션 조항이 추가됐다. 마침내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 드림클럽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에버튼 첫 시즌인 2007/08시즌 그의 활약은 돋보이지 않았다. 본인의 적응 문제도 물론 있었다. 더구나 에버튼은 당시 조셉 요보-필 자기엘카로 이뤄지는 철벽 센터백진을 자랑했고 이에 왼발 센터백 줄리안 레스콧을 레프트백으로 돌렸다. 레스콧이 레프트백 위치에서 깜짝 활약을 보이며, 베인스의 입지가 좁아져버렸다. 

레이튼 베인스(사진 좌측)
레이튼 베인스(사진 좌측)

그러나 두 번째 시즌인 2008/09시즌부터 베인스가 자신의 진가를 선보였다. 여기에 센터백 조셉 요보의 잦은 부상으로 레스콧이 센터백으로 돌아가면서 베인스가 레프트백 붙박이 주전으로 올라섰다. 이 시즌 베인스는 에버튼 이달의 선수상을 2연속으로 수상하는 한편 주전을 놓치지 않게 된다. 포츠머스 FC전에서 에버튼 이적 후 첫 골도 신고했다.

2010/11시즌 들어 베인스는 자신의 커리어를 꽃 피운다. 해당 시즌 베인스는 리그 전 경기 풀타임 출전했고 모든 대회 합쳐 7골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웬만한 공격자원 못지 않은 기록 이를 통해 클럽 올해의 선수상 등 상도 모두 석권했다. 

베인스는 2011/12시즌에는 네빌 사우스올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PFA 올해의 팀이 된 에버튼 선수가 됐다. 이 무렵 베인스는 공수 모두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며 유럽서 손꼽히는 레프트백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이 찾아온다. 당시 맨유 전성기를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했고 그들은 팀의 새 감독으로 에버튼 출신 데이빗 모예스 감독을 선임했다. 모예스 감독은 취임 후 전력 보강을 원했고 에버튼 듀오 레이튼 베인스, 마루앙 펠라이니를 모두 데려오길 바랐다. 

위건서 이적 당시 뭇 클럽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에버튼에 합류한 베인스였다. 충성심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그러하듯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이 없는 그에게 많은 우승을 하는 빅클럽 맨유의 제안은 그를 흔들었다. 

하지만 당시 맨유는 퍼거슨 감독&데이빗 길 단장이라는 완벽한 체제에서 모예스 신임 감독&에드 우드워드 신임 단장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변모 중이었다. 에버튼도 가격만 맞으면 두 선수를 판매할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우드워드 단장은 베인스+펠라이니 듀오를 터무니 없는 염가에 데려오려는 시도를 하게 됐다.

이는 에버튼의 심기를 거슬렀고 협상 창구를 닫히게 했다. 펠라이니의 경우 맨유가 바이아웃을 지르며 해결됐지만 베인스 딜은 끝내 결렬됐다. 베인스는 이적을 하려다 다시 팀에 남게 됐다. 

개인적인 선택이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의해 좌절되면 실망할법도 하다. 하지만 베인스는 다시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베인스는 이전처럼 맹활약을 펼쳤고 2014년 1월 4년 장기 재계약을 맺으며 에버튼 레전드 길을 걷게 됐다. 

베인스가 헌신한 에버튼. 그 홈구장 구디슨 파크.
베인스가 헌신한 에버튼. 그 홈구장 구디슨 파크.

이후는 역사 창조의 연속이었다. 영국 언론 <데일리 미러>에 따르면 2015년 1월에는 EPL 45번째 어시스트를 달성하며 그레엄 르 소를 제치고 수비수 최다 어시스트의 주인공이 됐다.

2017년 2월 영국 언론 BBC에 따르면 존 테리(40골), 데이빗 언스워드(38골)에 이어 수비수로는 3번째로 EPL 30골 고지를 등정한 선수가 됐다. 또 2017년 5월 <데일리 미러>에 따르면 EPL 수비수 최초로 50어시스트(베인스의 은퇴 후 EPL 총 어시스트는 53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도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2018/19시즌 1년 재계약을 했지만, 이 시즌부터 잦은 부상과 신체능력 하락으로 출전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2019/20시즌 그의 대체자인 뤼카 디뉴가 활약하며 백업 역할을 맡게 됐다. 

올 시즌 베인스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에버튼의 심장인 그다. 에버튼은 올 시즌 매우 힘든 시즌을 보냈다. 마르코 실바 감독이 경질됐고 던컨 퍼거슨 감독 대행이 겨우 팀을 수습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부임 이후 부침을 겪으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에버튼의 레전드가 된 베인스
에버튼의 레전드가 된 베인스

에버튼은 올 시즌 강등 위기를 겪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베인스는 팀을 살리기 위해 나오는 경기마다 모든 것을 쏟았다. 안첼로티 감독이 그의 프로다움에 찬사를 보내기도 할 정도. 그러는 사이 시즌 종료가 다가왔고 에버튼은 잔류+분위기 쇄신이라는 최소의 목표를 완성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베인스가 이에 큰 공을 세웠다. 

38라운드 AFC 본머스전에서 베인스는 후반 35분 디뉴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가 늘 그래왔듯 왼쪽 측면을 누볐고 종료 휘슬이 울렸다. 에버튼 홈인 구디슨 파크 전광판에는 레전드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에버튼의 헌정 영상이 상영됐다. 에버튼 팬으로 성장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나이. 베인스의 마무리였다. 

베인스는 같은 날 에버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13년의 세월 동안 에버튼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라면서 "제가 에버튼에서 뛰는 동안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에버튼과 계약했던 그 순간부터 환상적이셨던 팬 분들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드리고 팬 분들 모두 건강하시길"이라고 덧붙였다. 

베인스 은퇴일의 에버튼 전광판
베인스 은퇴일의 에버튼 전광판

◇EPL 최고의 순간

2011/12시즌 30라운드에서 스완지 시티와 에버튼이 맞붙었다. 만만치 않은 스완지에 고전하던 에버튼을 구한 것이 베인스였다. 후반 14분 에버튼이 상대 박스 앞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베인스가 감아찬 공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베인스는 득점 뿐만 아니라 철벽 수비로 상대 공격을 봉쇄했다. 에버튼은 후반 30분 니키차 옐라비치의 득점까지 더했고 결국 2-0으로 승리했다. 

스완지전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는 베인스
스완지전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는 베인스

◇플레이 스타일

레프트백의 정석. 수비 진영과 공격 진영을 성실히 오가며 측면에서의 숫자 싸움서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레프트백이었다. 날카로운 킥력은 그가 EPL에서 최초로 50어시스트 고지에 오르게 했다. 페널티킥, 프리킥 전담 키커로 득점력도 있던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레이튼 베인스

국적 – 영국(*잉글랜드 대표)

생년월일 - 1984년 12월 11일

신장 및 체중 – 170cm, 74kg

포지션 – 레프트백

국가대표 기록 – 30경기 1골

EPL 기록 – 420경기 32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2001/02시즌~2019/20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위건 어슬래틱 공식 홈페이지

에버튼 FC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 마켓> - 선수 소개란

<가디언> – Baines thriving after test of his fragile nerve

BBC - Everton capture Baines from Wigan

<스쿼카> - Ranking: Defenders with the most assists in Premier League history

<데일리 미러> - Leighton Baines is the defender with most assists in Premier League history - who joins the Everton star?

BBC - Leighton Baines became the third defender to score 30 Premier League goals after John Terry (40) and David Unsworth (38).

<데일리 미러> - Everton's Leighton Baines becomes first defender to reach 50 Premier League assists

사진=뉴시스/AP, 이형주 기자(영국 리버풀/구디슨 파크), EFC TV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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