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툭-툭-탁' 안토니오 발렌시아 – 164
[EPL Nostalgia] '툭-툭-탁' 안토니오 발렌시아 – 164
  • 이형주 기자
  • 승인 2019.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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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발렌시아
안토니오 발렌시아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툭-툭-탁' 안토니오 발렌시아 - <164>

여기 묵직했던 리더에 대한 헌사가 있다. ‘툭-툭-탁’이라는 패턴 돌파로 EPL에 놀라움을 안긴 선수.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전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암흑기를 지탱했던 선수. 바로 이 선수다.

발렌시아는 1985년 에콰도르 라고 아리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에콰도르의 아마존 유역이다. 그는 스타가 되기까지 아주 어렵고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맨유 공식 홈페이지 기고문 <아마존에서 올드 트래포드로>에 따르면 발렌시아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다. 그의 부친은 공병 처리소를 운영했는데, 발렌시아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어린 시절 유리병을 수집하곤 했다. 또 어머니를 도와 행상에서 과일 주스를 판매하기도 했다. 유년 시절의 힘든 기억은 그의 성장 동력이 됐다. 

기고문에 따르면 발렌시아는 14살 때 지역팀 엘 나시오날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왜소한 청년이었던 그는 웨이트에 집중하며 몸을 불렸고 그의 피지컬은 에콰도르 최고 수준이 됐다. 그는 국가대표팀 데뷔전에서 2골을 넣는 등 전 에콰도르가 주목하는 유망주가 됐다.

그런 발렌시아를 놓치지 않은 것이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이었다. 당시 후안 파블로 소린 등 특색 있는 멤버들을 중심으로 노란 잠수함 돌풍을 이끌던 비야레알 CF펠레그리니 감독이었다. 그는 이 빛나는 원석 역시 알아봤다. 그는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바 다를 건너 유럽에 발을 들이게 됐다.

하지만 갓 스물을 향해가는 에콰도르 청년에게 비야레알의 선수층은 벽이 됐다. 그는 세 시즌 간 단 2경기를 나서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2005/06시즌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로 임대를 떠나게 되나 그 곳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다시 한 번 에콰도르의 노란 유니폼은 발렌시아에게 행운을 선물해줬다. 국가대표팀 데뷔전에서의 맹활약이 유럽 진출의 발판이 됐듯, 발렌시아는 2006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EPL 위건 어슬래틱으로 이적하게 됐다.

당시 스페인에서 실패한 유망주였던 발렌시아가 EPL로 향할 수 있었던 것에는 젊은 지도자 폴 주얼 감독의 공이 컸다. 맨유 공식 홈페이지 기고문에 따르면 주얼 감독은 “발렌시아는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를 사로잡았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발렌시아가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 위건. 그 홈구장 DW 스타디움
발렌시아가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 위건. 그 홈구장 DW 스타디움

이어 “그는 위건 합류 이후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전술을 완전히 이해했죠. 똑똑했고 겸손했고 몸이 아주 튼튼한 선수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다소 그러한 경향이 옅어진 바 있지만, EPL은 기본적으로 피지컬을 중시하는 리그다. 상대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살아남아야 다음 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는 리그다.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던 발렌시아는 EPL과 꼭 맞았고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다. 

위건에서 발렌시아의 활약은 경이적이었다. 스몰 마켓을 운영하던 위건의 특성상 동료들이 자주 바뀌는 위건이었다. 하지만 발렌시아만은 굳건했다. 팀은 발렌시아를 적극 활용, 측면을 공략했고 이는 위건이 성공적으로 EPL에 안착하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가 EPL의 중심으로 위치하게 되는 때가 됐다.

2007/08시즌 유럽 축구의 패권은 맨유에 있었다. 당시 맨유는 EPL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며 우뚝 섰다.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하나의 문제로 골머리를 안고 있었다.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적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호날두는 2006/07시즌을 시작으로 유럽 최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당연히 맨유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호날두와 웨인 루니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드림클럽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희망하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그를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더, 여기 머물러라. 그래야 레알도 너의 가치를 더 높게 칠 것이다”라고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에게 일렀다. 

1년의 유예기간을 얻은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의 대체자를 물색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급을 넘어 역대 최고급을 향해 가는 그의 완벽한 대체자를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원 팀’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로 하고 그 ‘원 팀’의 중심이자 호날두 자리에 설 선수로 발렌시아를 선택했다. 

2009/10시즌 발렌시아는 맨유 이적 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의 표면 기록은 7골 12어시스트. 준수한 기록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영향력은 더 빼어났다. 맨유 공격의 중심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당시 맨유는 측면에 무게를 두는 팀이었다. 4-4-2 포메이션을 쓰는 맨유는 중앙에서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마이클 캐릭 등 중앙 미드필더들은 공을 잡으면 바로바로 오픈 패스를 전개했다. 

이후 발렌시아의 쇼타임이었다. 발렌시아는 이른바 툭-툭-탁으로 EPL 수비수들을 유린했다. 공을 잡으며 한 번 툭, 측면으로 공을 치며 두 번째 툭, 그리고 미사일 크로스로 탁. 그를 상대하는 모든 수비수들은 이 패턴을 알고 있었지만 발렌시아의 피지컬과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했다.

발렌시아가 이렇게 만들어낸 크로스는 열에 아홉 루니의 머리로 배달됐다. 발렌시아의 크로스, 루니의 헤더는 맨유의 득점 공식이었다. 비록 EPL 우승은 공격력이 폭발한 첼시 FC에 내줬지만 두 선수의 활약만큼은 최고였다.

발렌시아는 두 번째 시즌 우승을 이뤄내겠다는 각오로 임한다. 초반 페이스 역시 좋았다. 하지만 레인저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장기 부상을 당했다. 시즌 아웃이 유력했지만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재활, 시즌 중반 복귀에 EPL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11/12시즌은 발렌시아의 활약이 절정에 오른 시즌이었다. 부상을 말끔히 씻어낸 그는 첫 시즌의 경기력 그 이상을 보여줬다. 역시나 폴 스콜스, 캐릭 등이 측면으로 공을 뿌리면 발렌시아가 크로스해 루니가 마무리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해당 시즌 맨유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포지션 변경에도 성공한 발렌시아
포지션 변경에도 성공한 발렌시아

하지만 2012/13시즌 이후로 발렌시아가 내리막을 걷게 된다. 혹자는 맨유 상징의 번호인 7번을 달게 돼 부담감으로 실력이 내려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허리부상이었다. 그는 만성적인 허리 부상을 안게 되면서 몸의 밸런스가 깨졌다. 통증으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신체능력이 하락한 발렌시아는 전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발렌시아 최악의 시즌이었던 이 시즌에 그래도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그가 새로운 포지션에 녹아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퍼기 타임’이라는 대명사를 만들 정도로 유연한 공격 전술의 대가였던 퍼거슨 감독은 팀이 지고 있을 때면 발렌시아를 풀백에 기용하곤 했다. 윙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그의 성실함과 수비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경험은 2013/14시즌 이후 발렌시아가 풀백으로 완전히 포지션 변경을 하면서 큰 힘이 됐다.

이후 발렌시아는 전성기의 실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맨유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암흑기를 지탱하는 선수가 됐다. 

퍼거슨의 후임 중 특히 루이 반 할 감독은 초반 스리백과 포백을 병행하며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발렌시아는 점차 풀백으로 변신하게 됐다. 원래부터 수비력이 좋았던 그였기에 풀백 변신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2015/16시즌에는 반 할 감독과 함께 FA컵 우승을 이뤄내게 됐다. 

조세 무리뉴 감독으로 다시 감독이 교체된 이후에도 발렌시아는 변함없는 신뢰를 받았다. 발렌시아는 모든 대회 합쳐 이 시즌만 43경기에 출전하며 무리뉴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2017/18시즌 역시 발렌시아는 묵묵히 팀을 지켰다. 3라운드 에버튼 FC전에서는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9월의 득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주장 캐릭의 은퇴가 결정되자 무리뉴 감독이 그에게 주장 완장을 맡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헌신적인 주장의 마지막은 좋지 못했다. 2018/19시즌 그는 부상으로 단 9경기를 출전하는 것에 그쳤다. 주전 라이트백을 잃어버린 맨유는 오른쪽 수비에 문제를 보이며 졸전을 거듭했다.

또한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주장의 소임을 잘 하지 못했다. 부상이 너무 잦아 선수단과 접촉할 기회가 적었다. 뿐만 아니라 능숙하지 못한 언어 문제로 표류하는 선수단을 잡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맨유는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팬들이나 선수들, 언론들 모두 마지막 아쉬운 모습으로 그를 각인할 리 없었다. 지금껏 보여준 그의 빼어난 능력, 귀감이 되는 헌신, 특유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발렌시아를 사랑하는 이들은 38R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서, 브라운관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발렌시아는 카디프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29분 교체 투입됐다. 발렌시아는 남은 시간 경기장을 누볐다. 경기 내내 박수를 받은 그는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소리 없는 영웅을 위한 모든 이들의 예우였다. 발렌시아는 시즌 후 맨유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고 이제 고국 에콰도르 리그의 UD 키토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2011/12시즌 '무각골' 장면
2011/12시즌 '무각골' 장면

◇EPL 최고의 순간

2011/12시즌 EPL 31라운드에서 블랙번 로버스와 맨유가 맞붙었다. 당시 맨유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라운드 결과에 따라 희비가 계속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이날 맨유는 블랙번의 늪 축구에 당황하며 후반 35분까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맨유에는 발렌시아가 있었다. 후반 36분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발렌시아는 드리블 후 무각슛으로 득점을 했다. 후반 41분 애쉴리 영의 한 골을 더한 맨유는 2-0 승리, 우승 경쟁을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 
 
◇플레이 스타일

탄탄한 피지컬에 엄청난 스피드를 지녔던 선수다. 그로 인해 툭-툭-탁이라는 반복되는 패턴하면서도 수비수들을 농락했다. 신체 능력이 하락한 뒤에는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 특유의 성실함으로 팀에 큰 기여를 했던 선수다.
 
◇프로필

이름 – 안토니오 발렌시아

국적 – 에콰도르

생년월일 - 1985년 8월 4일

신장 및 체중 - 180cm, 78kg

포지션 – 라이트윙, 라이트백

국가대표 기록 – 96경기 11골~

EPL 기록 – 325경기 24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2006/07시즌~2018/19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9/10시즌~2018/19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위건 어슬래틱 공식 홈페이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 마켓> - 선수 소개란

맨유 공식 홈페이지 - ANTONIO VALENCIA: FROM THE AMAZON TO OLD TRAFFORD

<더 선> - Man United stalwart Antonio Valencia joins Ecuador champions LDU Quito on free transfer after a decade at Old Trafford

사진=뉴시스/AP, MUTV, 이형주 기자(영국 위건/DW 스타디움)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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