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N스포츠=이형주 기자]
죄책감에 힘들어하던 제자가 20년 만에 스승 앞에 섰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은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멕시코와 조별리그에서 한 조에 속했다. 당시 달랐던 점은 경기 순서. 이번에는 조별리그 2차전으로 멕시코전을 치렀지만, 당시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와 마주했다.
당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경기의 주인공은 하석주(50‧現 아주대학교 감독)였다. 하 감독은 당시 전반 27분 귀중한 프리킥 선제골을 넣으며 환호했다. 하지만 3분 만에 백태클을 해 퇴장당했다. 수적 열세를 안게 된 한국은 이후 3실점을 해 무너졌다. 하석주에게 멕시코전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게다가 하석주는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가게 될 일까지 겪게 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2차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를 만나 0-5로 대패했다. 네덜란드는 명장 히딩크 감독이 이끌고 데니스 베르캄프, 마크 오베르마스, 프랑크 데 부어, 야프 스탐, 에드가 다비즈 등 스타들이 즐비했던 세계 최정상급 팀. 하지만 그 경기 대패로 인해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던 차범근(65)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 당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3차전은 감독 대행 체제로 치렀다. 한국은 투혼을 발휘해 벨기에와 1-1 무승부를 기록,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하 감독은 벨기에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대회 종료 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은사인 차 감독이 자신의 실수로 경질 당했다는 것. 이후 하석주는 죄책감에 차 감독을 볼 수 없었다. 최대한 피하려고 애썼다.
그런 두 사람이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SBS 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 하우스를 통해 재회했다. 하석주는 차 감독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차 감독은 그런 제자를 위로했다. 차 감독은 제자를 안아주며 “왜 그 때 일을 그렇게 담고 살어? 축구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라고 말하며 다독였다.
해후 이후 하석주는 “당시 퇴장을 당하고 나서 너무나 큰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난 거예요. 당시 퇴장으로 내가 비판받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감독님은 그 때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대표팀 감독을 하고 계셨을 분이다. 그래서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차 감독은 “경기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며 괜찮다고 다시 얘기했다. 또한 자리에 함께 한 최용수는 “(하)석주 형이 항상 사과드리고 싶어했어요”라고 말했다.
차 감독은 “하필 그 때 백태클 규정이 강화돼서”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최용수(44) 前 FC 서울 감독이 “당시 태클이 퇴장은 맞습니다”라고 짐짓 진지하게 말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이후 출연자들은 이번 월드컵에 대한 담론을 나눴고 두 제자도 참여했다.
방송 종료 후 두 사람은 서로를 어깨동무하며 그간의 세월을 반추했다. 20년을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 비로소 조금이나마 스러지는 순간이 됐다.
사진=뉴시스, SBS 방송화면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