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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레전드 매치①] WKBL, 팬들의 사랑을 통해 탄생하다

[WKBL 레전드 매치①] WKBL, 팬들의 사랑을 통해 탄생하다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18.02.15 19:01
  • 수정 2018.02.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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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자
박신자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여자농구 팬들의 사랑을 통해 1997년 2월 24일 탄생한 WKBL이 20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WKBL은 수많은 명경기를 양산하며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이에 STN스포츠가 ‘WKBL 레전드 매치’를 통해 WKBL 각 시즌과 해당 시즌의 챔프전을 간략히 소개한다.

[WKBL 레전드 매치①] WKBL, 팬들의 사랑을 통해 탄생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 태동한 한국 여자농구

농구라는 스포츠는 1891년 기독교 선교 단체 YMCA의 체육교수 제임스 네이스미스에 의해 등장했다. 당시 추운 겨울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땀 흘릴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하던 네이스미스는 농구를 고안했다. 이후 농구는 천천히 인기를 얻어나갔고 여자농구 역시 1년 뒤인 1892년 태동됐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에 농구라는 스포츠가 도입된 것은 1907년의 일이다. 당시 YMCA 선교사인 필립 질레트는 한국에 농구라는 스포츠를 소개했다. 지·덕·체 갖출 수 있고 그리스도 정신인 자유와 평등, 인애 정신을 함양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반도를 휩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구는 꽃피울 시간을 갖지 못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 강점기, 해방, 6‧25 전쟁까지. 한국인들이 농구를 절대 즐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난의 역사를 지나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농구가 이 땅에 씨앗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농구의 경우 그 태동조차도 쉽지 않은 편이었다.

1950년 대 중후반까지 여자농구라는 개념은 굉장히 생소했다. 또한 여자농구라는 단어 자체가 학교농구에 국한됐다. 여자농구를 통해 생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저 체력 단련용의 스포츠일 뿐이었고, 때문에 여자농구는 여자고등학교 간의 농구로만 국한됐다.

하지만 여고교 간의 농구가 활성화되면서 여자농구 붐이 일어났다. 이화여고, 숙명여고 등 당시 여자농구 명문고들의 대결이 펼쳐질 때면 많은 관중들이 모였다. 이는 실업팀의 창단으로 이어진는데 1957년 한국은행 여자농구팀이 창단된 뒤 상업은행, 한일은행, 제일은행, 동신화학, 한국전력, 서울은행 등 실업팀 창단이 줄을 이었다.

박찬숙
박찬숙

◇여자농구, 박신자·박찬숙을 만나다

성장을 거듭하던 여자농구는 박신자라는 스타로 인해 한 단계 도약했다. 박신자는 숙명여고 시절부터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고교 졸업 후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단했다.

박신자와 함께 여자농구는 성장했다. 1964년 세계선수권에서 당시 최강팀인 상업은행이 국가대표팀 격으로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박신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5에 뽑혔다. 이 뿐만 아니라 박신자 중심의 한국 대표팀은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룬 쾌거를 일궜다.

박신자의 뒤는 박찬숙이 이었다. 박찬숙은 숭의여고 시절부터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1975년에는 고교 1년생으로는 이례적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박찬숙은 1978년 태평양화학 농구단에 입단해 맹활약했다. 또한 1979년 FIBA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은메달,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WKBL 레전드들로 이뤄진 그레이트 12
WKBL 레전드들로 이뤄진 그레이트 12

◇존폐의 위기 속에서 꽃핀 WKBL

하지만 여자농구는 1990년대 들어 하락세를 겪게 됐다. 여기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외환위기 사태까지 겹치며 여자 농구는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경제 위기전 13개나 되던 실업팀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모든 악재도 여자농구를 향한 팬들의 사랑과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를 통해 1997년 2월 24일 한국여자농구연맹을 중심으로 리그가 창단됐다. 이 리그가 바로 WKBL이다.

WKBL은 출범 이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농구인들의 존경을 받던 이성구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이후 WKBL은 인기를 되찾으며 신생 리그답지 않게 빠른 안정세를 보였다.

2007-2008시즌 전까지 여름리그, 겨울리그 체제로 진행된 WKBL
2007-2008시즌 전까지 여름리그, 겨울리그 체제로 진행된 WKBL

◇~2007 겨울 시즌까지, 여름리그와 겨울리그가 공존하던 모습은 어땠을까?

WKBL 출범 후 2007 겨울시즌까지는 리그는 한해 2번씩 치러지게 된다. 한 해에 여름리그와 겨울리그가 치러지는 방식이었다.

SKC(SK 증권) 출신으로 실업팀 시절과 WKBL을 모두 경험했던 레전드 STN스포츠 유영주해설위원은 이 시기를 선수들이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시기로 기억한다. 유 위원은 “저 역시 IMF 때 팀이 해체되면서 드래프트로 라이벌팀이었던 삼성생명행으로 가게 됐죠. 저뿐만 아니라 이 시기 대부분의 선수들이 팀 해체와 이적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죠”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사계절 내내 농구를 볼 수 있었던 점은 농구팬들에게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 위원은 “선수들은 힘들었을지언정 팬들에게는 즐거운 시기가 아니셨을까 생각해요. 사계절 내내 농구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웃음)”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7년 6월 20일을 끝으로 여름리그‧겨울리그 체제는 마감을 하게 됐다. WKBL이 선수들의 휴식과 재활 기간을 부여하고, 국제 대회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단일리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WKBL은 2007년 6월 20일부로 임시 이사회를 통해 단일리그 시행안을 내놨다. 이후 리그는 단일 리그로 치러지게 됐다.

사진=WKBL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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