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도 됐을 가시밭길, 노선영은 동생 생각하며 달렸다
안 가도 됐을 가시밭길, 노선영은 동생 생각하며 달렸다
  • 이형주 기자
  • 승인 2018.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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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영
노선영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노선영(29)은 안 가도 됐을 가시밭길에서 아름다운 레이스를 펼쳤다.

노선영은 12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에서 1분 58초 75를 기록, 27명 중 14위에 올랐다.

故 노진규
故 노진규

◇우애 좋은 빙상 남매, 갑작스레 세상 떠난 동생 노진규

우애 좋은 빙상 남매가 있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대들보 노선영과 쇼트트랙 유망주 노진규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힘든 운동 중에도 서로를 챙기는 소중한 남매였고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비극이 찾아왔다. 지난 2013년 9월 동생 노진규의 어깨 부위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당시 노진규의 종양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후 팔꿈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종양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종양이 악성으로 판명됐고 항암 치료 중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났다.

노선영은 동생의 사망 후 노진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진규가 3일 오후 8시에 좋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진규가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소식을 전했다.

질주하는 노선영
질주하는 노선영

◇가지 않아도 됐을 가시밭길, 누나는 동생을 위해 스케이트를 신었다

사실 노선영에게 있어 평창 올림픽은 가지 않아도 될 무대였다. 노선영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대회부터 국가대표 생활을 했다. 자신에게 있어 3번째 올림픽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대회를 끝으로 스케이트를 벗는 것이 확실시 됐다.

하지만 노선영에게 스케이트를 벗어서는 안 될 이유가 생겼다. 바로 죽은 동생의 꿈을 이뤄줘야 했다. 쇼트트랙 유망주였던 노진규는 평창 올림픽 무대를 밟기를 무척이나 소망했다. 노선영은 동생의 꿈을 대신 이뤄내야 했다.

동생의 꿈이니만큼 노선영은 단 한 번의 레이스도 허투루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SK텔레콤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 선수권 대회 여자 1,500m 종목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남다른 성적을 보였다.

기자회견 중인 노선영
기자회견 중인 노선영

◇빙상연맹의 미숙한 행정, 노선영을 눈물짓게 하다

기록을 끌어올려가던 노선영은 지난달 19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의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규정 미숙지로 벌어진 일이었다.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올림픽 쿼터가 달린 ISU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개인 종목 출전권을 따야 평창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맹은 대회 규정을 오역했다. 이로 인해 노선영은 지난달 19일 ISU로부터 예비 2순위를 받으며 출전 자격이 없음을 고지 받았다. 이로 인해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는 듯 했다.

노선영이 지난달 24일 SNS 계정을 통해 "나는 올림픽에서 제외당했다. 다시는 국가를 위해 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망한 노선영은 짐을 싸 선수촌을 나갔다.

선수촌에 복귀한 날의 노선영
선수촌에 복귀한 날의 노선영

◇발생한 기적, 노선영은 동생을 위해 다시 선수촌으로 복귀하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기존 배정된 엔트리에 결원이 생겼다. ISU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출전 선수 중 결원이 생겼다고 통보 받았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여자 1,500m 엔트리 1장을 배정한다고 알렸다.

기존 평창 올림픽 출전 예정자인 예카테리나 시코바, 율리아 스코코바가 평창으로 오지 않음에 따라 자리가 생긴 것이다. 이 자리에 예비 2순위인 노선영이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평창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졌다.

사실 상처를 받은 노선영이 올림픽에 나설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노선영은 팬들의 연이은 격려에 올림픽 참가를 결심했다. 노선영은 선수촌 복귀를 결정한 뒤 SNS를 통해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당당하게 올림픽에 출전해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대표 생활을 마무리하려 한다"며 "이렇게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응원과 관심이 큰 힘이 되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후회없는 레이스 펼친 노선영
후회없는 레이스 펼친 노선영

◇노선영, 평창에서 후회없는 아름다운 레이스 펼치다

마침내 지난 12일 노선영은 출발 라인에 섰다. 노선영은 5조에서 예카테리나 아이도바(카자흐스탄)와 함께 경기를 벌였다. 노선영은 긴장한 나머지 스타트 건이 울리기 전에 움직여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스타트 신호에 맞춰 출발한 노선영은 힘찬 레이스를 펼쳤다. 노선영은 1분 58초 75로 경기를 마쳤다. 올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인 1분 57초 84에 약간 못 미쳤다. 순위는 전체 14위. 하지만 숫자로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경기 후 노선영은 웃어보였다. <뉴시스>에 따르면 노선영은 "후회 없이 경기를 했다. 마음이 편하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미련 없이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며 운을 뗐다.

이어 “동생 진규도 생각했다”고 말한 뒤 “동생이 오늘 내 경기를 봐도 만족스러워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누나는 동생을 위해 험한 가시밭길을 모두 밟았다. 많은 악재 속에서도 동생의 꿈을 위해 뛰었고, 이를 이뤄냈다.

사진=뉴시스

total87910@stn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