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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1998년,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리다’ 데이빗 베컴 - 100

[EPL Nostalgia] ‘1998년,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리다’ 데이빗 베컴 - 100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17.12.21 19:30
  • 수정 2018.11.14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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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베컴
데이빗 베컴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1998년, 1998년,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리다’ 데이빗 베컴 - <100>

수많은 관중들의 응원 속에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경기장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월드클래스의 축구 선수들, 그들은 슈퍼스타들이라고 불릴만하다. 이전 프리미어리거들 중 슈퍼스타라는 호칭이 잘 어울렸던 선수가 있다. 또한 이 선수는 역경을 딛고 슈퍼스타가 돼 타인의 귀감이 되는 선수다. 

베컴은 197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베컴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기며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꿨다. 그의 재능은 꿈을 이뤄줄 수 있을만큼 찬란했다. 베컴은 1992년 맨유와 프로 계약을 하며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사실 베컴의 집안은 토트넘 팬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베컴의 아버지 테드 베컴은 뮌헨 참사를 이겨낸 맨유를 사랑했다. 이로 인해 베컴도 코크니 레드(런던 태생의 맨유팬)가 됐다. 이는 베컴이 토트넘의 제의를 거절하고 맨유에 입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런던에서 축구를 계속하며 기량을 쌓아가던 베컴은 말콤 핏제온이라는 맨유의 런던 에이전트 눈에 띄어 맨유에 스카웃됐다. 이어 만 13살이 되는 해 맨유로 향하게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 연습생이 된 베컴은 그 당시 Class of 92‘ 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과 유스 시절을 같이 보내게 된다. 게리 네빌, 필립 네빌, 폴 스콜스, 니키 버트, 존 오케인, 벤 쏜리, 키스 길레스피, 크리스 캐스퍼, 로비 새비지 등이 당시 맨유는 후일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주름잡게 될 선수들이 가득했다.

이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조지 해리슨 지휘 하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맨유는 1992년 FA 유스 컵을 들어올렸다. 베컴 역시 이에 공헌하며 팀에서 주목 받는 유스 자원 중 한 명으로 자리햇다. 

베컴은 마침내 1992년에 브라이튼과의 리그 컵에서 교체 투입되며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또한 1994년에는 갈라타사라이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데뷔해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아직 베컴은 경험이 필요했다. 

맨유는 그를 프레스턴에 임대 보냈다. 베컴은 후엔 “프레스턴에서 데이빗 모예스(당시 선수) 등과 함께 한 것은 내 인생에 큰 자산이 됐다”고 회고할 정도로 그는 임대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1995/96시즌은 맨유가 변혁을 개시하는 시즌이 됐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당시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등 당시 맨유의 스타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어 유스에서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을 대거 1군으로 콜업했다. 

당연히 대런 앤더튼, 마크 오베르마스, 로베르토 바지오 등 여러 스타들의 맨유 이적설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퍼거슨은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유스 선수들을 믿으며 기회를 줬다.

당시 베컴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에게 비아냥이 쏟아졌다. 특히 BBC의 앨런 한센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말로 퍼거슨의 맨유를 거세게 비판했다. 당시 맨유는 1995/96시즌 첫 경기에서 아스톤 빌라에 1대3으로 패했다. 결과가 나자마자 영국 언론은 퍼거슨을 비판하는 기사로 도배됐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맨유는 1995/96 시즌에 리그와 FA컵 동시 석권이라는 더블을 기록했다. 특히 베컴은 FA컵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시즌 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베컴은 그 다음 해인 1996/97시즌에도 안정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타이틀을 수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96/97시즌에 베컴은 윔블던을 상대로 지금도 회자되는 하프라인 골을 보여줬다.

시즌이 끝난 뒤 베컴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7번 유니폼을 입게 됐다. 베컴은 등번호를 10번에서 칸토나의 은퇴로 공석이 된 7번으로 변경하게 됐다. 조지 베스트, 조니 베리, 스티브 코펠,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등 그 동안 맨유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한 선수들이 주로 단 번호를 그가 달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베컴은 승승장구했다. 1996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에도 성공했다. 또한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베컴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대망의 1998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베컴의 활약은 준수했다. 특히 3차전 콜롬비아 전에서는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득점까지 올렸다. 하지만 문제의 아르헨티나전이 찾아왔다. 

당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서로 양국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했다. 양 국인 16강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선수 면면도 양 팀 모두 화려해 누구의 손을 들기가 어려웠다. 전반전 양 팀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골, 또 만 18살 마이클 오웬의 멋진 드리블 골과 하비에르 사네티의 세트피스 득점으로 인해 팽팽하게 2대2로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그 때까지 데이빗 베컴은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마이클 오웬의 골도 바로 베컴의 패스로부터 시작됐다. 베컴은 오른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고 위치상 상대편 미드필더인 디에고 시메오네와 자주 마주쳤는데 후반 2분 일이 터졌다. 

계속해서 베컴을 자극하던 시메오네가 아크 정면에서 베컴에게 푸싱 파울을 가했다. 그 때 데이빗 베컴이 혈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발을 들어 보복 가격을 하려 했던 것이다. 심판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고 베컴에게 다이렉트 퇴장이라는 중징계를 줬다. 

잉글랜드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승부차기 끝에 패하게 됐다. 데이빗 베컴은 비난의 중심이 된다. 영국 언론은 패배의 원흉으로 데이빗 베컴을 지목했다. 

베컴은 세상 대부분의 이들에게 외면당했다. 베컴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때 퍼거슨이 손을 내밀었다.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퍼거슨은 “실력으로 실수를 만회하라”라고 조언했다. 

또한 베컴은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브루클린 베컴을 부양해야했다. 베컴은 이를 악물었다. 필드 위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자, 실수를 만회하고자 했다. 

시즌 초반은 악몽과 같았다. 어느 경기장을 가든 야유를 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올드 드래포드에는 야유보다 함성이 더 크게 울렸고 그 것 또한 데이빗 베컴에게 큰 힘이 됐다.

레스터 시티와의 첫 경기부터 득점을 올린 베컴은 그 시즌을 어마어마한 시즌으로 만들었다. 드라마틱한 시즌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98/99 시즌, 라이언 긱스의 FA컵 4강 전 매직드리블, 로이 킨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활약 등 각 선수들마다 기억에 남을만한 경기들이 나왔지만 베컴에게 기억에 남을 경기는 인터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 됐다. 

월드컵 퇴장 이후 처음 시메오네를 만나게 된 베컴은 그림 같은 크로스를 올리며, 어시스트 2개로 인테르를 꺾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으로 승리한 맨유는 기선을 제압했다. 맨유는 인테르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폴 스콜스의 한 골을 더하며 니콜라 벤톨라가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친 인테르를 제압했다. 베컴은 시메오네를 향한 복수에도 성공했다.

결국 이 시즌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으로 3관왕을 달성했다. 모든 이에게 외면받았던 그가 이러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베컴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99/00시즌에도 맨유가 리그를 제패하는 데 공헌했다. 

2002 월드컵 유럽 지역 조별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 그리스 전도 한 편의 드라마가 됐다. 베컴은 위기의 순간에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득점하며 팀을 구해냈고 잉글랜드는 조 1위로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하게 됐다. 3년 전의 역적이었던 선수가 조국을 구해낸 영웅이 된 것이다. 

본선에서 베컴은 최종 목표였던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별 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전 페널티킥 결승골을 득점하며 시메오네와 아르헨티나에 멋진 복수를 하게 됐다. 

맨유에 복귀한 이후 베컴은 은사 퍼거슨 감독과 잦은 마찰을 빚게 된다. 결국 이 둘의 갈등은 2003년 아스날과의 FA컵 5라운드에서 패한 뒤 일어난 일명 축구화 사건으로 인해 터지게 됐다. 

경기 후 베컴을 질책하던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앞에 있던 축구화를 찼다. 그 축구화가 공교롭게도 베컴의 눈썹 위로 갔다. 이로 인해 베컴은 눈썹 위에 상처가 났다. 이는 그간 두 사람의 긴장 관계를 외부로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결국 베컴은 2003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행을 택했다. 

베컴은 레알에서 활약한 뒤 LA 갤럭시, AC 밀란 등을 거쳤다. 이후 2013년 파리 생제르망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2017년 한국에도 방한한 베컴은 전 세계를 돌며 엠버서더 등 축구 관련 일들도 수행하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1996/97시즌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에서 윔블던과 맨유가 마주했다. 2-0으로 앞선 상황, 베컴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았다. 상대 골키퍼가 나와있는 것을 본 베컴은 장거리슛을 해 득점에 성공했다. 슈퍼스타 베컴이 EPL에 등장했음을 알리는 장면이 됐다. 또한 맨유는 3-0 승리로 산뜻한 출발을 보인 뒤, 기세를 몰아 EPL 우승에도 성공했다. 

◇플레이 스타일

수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하드워커인 선수다. 하드워커라는 말 그대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많은 활동량을 가져간다.  많은 장점을 지녔으나 특히 킥 하나만 놓고 보면 축구 역사상 손에 꼽을 수 있는 선수다. 이를 통해 칼날 같은 크로스를 올렸고 프리킥 득점에도 능했다. 

◇프로필

이름 – 데이빗 베컴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75년 5월 2일

신장 및 체중 - 183cm, 86kg

포지션 – 라이트윙

국가대표 경력 – 115경기 17골

◇참고 영상 및 자료

The Class of '92

프리미어리그 1992/93시즌~2002/03시즌 리뷰 비디오 
맨유 1992/93시즌~2002/03시즌 리뷰 비디오

<가디언> - Archive, 1996: Gifted footballer David Beckham tipped for greatness
<데일리 미러> - David Beckham says yes to Spurs! And he's set to make his Premier League debut against... Manchester United
<인디펜던트> - Football: Manchester United's class of '92
<브라이턴 호브 뉴스> - Brighton & Hove Albion: 23 years since David Beckham’s debut at the Goldstone Ground
<스카이스포츠> - Remembering that David Beckham wonder goal 20 years on...
BBC - 'You can't win anything with kids’
<스탠다드> - David Beckham: Manchester United's number seven shirt was never mine
<더 선> - David Beckham jokes about Sir Alex Ferguson boot-kicking incident while at Manchester United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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