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동료의 파업을 만든' 케빈 켐벨 - 97
[EPL Nostalgia] '동료의 파업을 만든' 케빈 켐벨 - 97
  • 이형주 기자
  • 승인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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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켐벨
케빈 켐벨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동료의 파업을 만든 '케빈 켐벨' - <97>

지난 10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에 위치한 앤 필드에서 2017/18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리버풀 FC와 에버턴 FC 간의 경기가 펼쳐졌다. 머지사이드 더비로 펼쳐진 이 경기는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날 경기에서 알 수 있듯 머지사이드는 치열함을 자랑하는 경기다. EPL 모든 더비 경기 중 경고와 퇴장이 가장 많이 나온 더비일 정도로 거친 경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머지사이드 더비 승부의 추는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에버턴은 머지사이드더비 총 228경기 중 66승 72무 91패로 리버풀에 밀려있다. 특히 홈에서는 1999년 9월 이 선수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머쥔 이래 단 한 번도 리버풀 홈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켐벨은 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은 그는 1985년 연습생 신분으로 아스널 FC에 입단했다. 켐벨은 아스널 아카데미에서 많은 골을 넣으며 주목을 받았고 1988년에는 FA 유스 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두각을 나타내는 켐벨에게 1군 데뷔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켐벨은 1988년 에버턴 FC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가 나중에 에버턴에 합류함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우연이었다. 켐벨은 아스널 1군에 폴 머슨과 앨런 스미스라는 쟁쟁한 공격수들이 있었음에도 점차 출전 기회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어린 켐벨은 더 많은 출전 기회를 필요로 했다. 켐벨은 이를 위해 레이튼 오리엔트 임대행을 택했다. 켐벨은 오리엔트 임대 시절 16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했다. 당시 오리엔트의 감독이던 프랑크 클락은 그의 완전 영입을 위해 노력했으나 아스널의 거절로 무위에 그쳤다. 켐벨은 레스터 시티에서 임대 생활을 한 번 더 겪은 뒤 아스널로 복귀했다. 1990/91시즌 그의 유일한 1부 리그 우승도 거머쥐었다.

켐벨의 기량은 성장했지만 오히려 그의 입지는 좁아졌다. 1991년 이안 라이트가 영입되면서 켐벨의 입지는 더욱 줄었다. 1992/93시즌 FA컵 우승, 1994/95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 등 우승 복이 따랐으나 켐벨 본인으로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게다가 아스널에 데니스 베르캄프와 존 하트슨이 합류하면서 켐벨의 자리는 없다시피됐다. 켐벨로서는 선택을 해야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결국 켐벨은 아스널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켐벨은 노팅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96/97시즌이 문제였다. 노팅엄은 1R 코벤트리 시티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하이라이트도 많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팀 전력이 우수하지 못했던 까닭에 강등이라는 슬픔에 마주했다. 켐벨은 강등 이후에도 팀에 남아 노팅엄이 1998년 2부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에 기여했다.

하지만 켐벨은 이 당시 구단과 마찰을 겪었다. 이로 인해 켐벨은 쫓기듯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이로 인해 켐벨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으며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였던 피에르 반 후이동크가 잠시 동안 파업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쫓기듯 향한 터키 무대에서 켐벨은 더한 악재를 만났다. 인종 차별에 시달린 것. 당시 영국 언론 <미러>에 따르면 트라브존스포르의 회장이던 메메트 알리 일마즈는 그에게 “식인종 같다”며 모욕적인 말을 했다. 켐벨은 이후 이적을 꾀했고 팀 동료이던 오군 테미즈카노글루, 압둘라흐 에르칸의 도움으로 트라브존스포르를 탈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에버턴에 도착한 1999년 당시 켐벨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 사면초가가 들려왔다. 하지만 켐벨이 절치부심했다. 켐벨은 축구화 끈을 고쳐매고 축구에만 집중했다. 이로 인해 활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켐벨이 에버턴에 도착한 1999년 3월 소속팀 에버턴 또한 상황이 좋지 못했다. 강등을 피하기 위해 허덕였다. 하지만 켐벨이 첫 8경기에서 9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켐벨은 임대 후 시즌 팀 최다 득점자로 자리하는 기적을 썼다. 에버턴 또한 켐벨의 활약 덕에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1994년 4월에는 임대 선수 최초로 EPL 이 달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연히 완전 이적이 이뤄졌다. 켐벨은 에버턴에 남기로 합의했다. 1999/00시즌에도 켐벨의 활약은 이어졌다. 앤 필드에서 치러진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득점을 했으며 이 시즌에도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자리했다.

켐벨의 활약은 꾸준했다. 그가 에버턴을 떠나게 되는 2005년까지 팀 내 득점 기록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나왔다. 2005년 에버턴 말기 다시 자리를 잃게 된 그는 웨스트 브롬위치로 이적했다.

켐벨은 2005년 1월 웨스트 브롬위치로 이적했는데 또 한 번의 기적을 썼다. 켐벨의 이적 당시 WBA도 이전 소속팀 에버턴처럼 강등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켐벨의 영입 이후 반등, 강등을 피했다. 크리스마스에 최하위에 있던 팀이 최초로 강등을 피한 경우를 만들었다.

하지만 WBA 역시 한 시즌 뒤인 2006년 강등당했다. 이로 인해 챔피언십으로 무대를 옮기게 된 켐벨은 같은 챔피언십의 카디프 시티로 팀을 옮겼다. 이후 선수 생활 마지막 불꽃을 태운 그는 2007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EPL 최고의 순간

1996/97시즌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에서 노팅엄와 코벤트리가 마주했다. 이 경기는 켐벨의 무대가 됐다. 켐벨은 3골을 몰아치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노팅엄 역시 켐벨의 활약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다.

◇플레이 스타일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였다. 이로 인해 어려운 자세에서도 슈팅을 해냈다. 문전 앞 위치 선정도 뛰어났다. 주력도 준수했고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에서도 여간해서는 밀리지 않았다.

◇프로필

이름 – 케빈 켐벨

생년월일 - 1970년 2월 4일

신장 및 체중 - 188cm, 86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無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