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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포트라이트]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 최현미의 꿈

[S포트라이트]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 최현미의 꿈

  • 기자명 윤승재 기자
  • 입력 2017.11.03 10:15
  • 수정 2017.11.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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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윤승재 기자]

“복싱의 신비함이라는 게 어떤 고통이 와도 참고 견디며 자신만 볼 수 있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거야.”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명대사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진흙 속의 진주라는 의미로 어려운 상황에서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로 쓰인다.

2008년 10월 11일.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 불렸던 소녀는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세계 챔피언’ 타이틀 벨트를 허리에 찬 소녀는 링 위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힘겨운 훈련을 이겨내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그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최연소 세계 챔피언’이었던 소녀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이제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1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났어도 그의 허리에는 여전히 벨트가 채워져 있다. 그는 링 위에서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다. 프로 데뷔 후 치른 15경기에서 1패도 허용하지 않은 ‘무적’의 선수로 성장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현미(26)는 시종일관 밝았다. 경기에서 보여준 살기 어린 눈은 반달 모양의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가득한 모습에서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기죽지 않을 자신 있어’라는 무언의 눈빛은 인터뷰는 물론 곧 있을 타이틀 방어전을 향한 자신감을 대변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험난했던 탈북 과정과 낯선 땅에서의 좌절 등의 개인사를 겪으며 성장한 최현미는 비인기 종목 선수이란 설움과 스폰서 부재 등의 숱한 시련을 겪고 단단해졌다. 

 

최현미 선수 프로필 ⓒSTN스포츠
최현미 선수 프로필 ⓒSTN스포츠

 

#S. ‘STORY’ - 새터민 그리고 여자 복서 최현미

최현미는 “탈북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었다”고 말했다. 13세의 최현미는 당시 무역상이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여행’을 가장한 긴 탈북 여정을 떠났다. 하지만 그 여행은 최현미 인생에 큰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별다른 의심 없이 가족들과 함께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 도착한 최현미는 곧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겪었다. 

베트남 국경을 건너자마자 아버지와 오빠는 “다 같이 있다 잡히면 안 된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을 떠났다. 만 4개월 동안 둘의 생사를 모른 채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야 했던 어린 최현미는 밖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있으면서 영화 ‘올드보이’를 찍었다고 한다. 최현미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도 못 했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이 많이 든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들어온 최현미였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그리 순탄치 못했다. 온 가족이 곧바로 살길을 찾아 헤매야 했다. 최현미도 결국 고심 끝에 다시 권투 글러브를 꼈다.  북한에서 복싱 유망주로 커왔던 그였기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복싱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 최현미의 시선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 고정됐다. 

하지만 최현미의 실력과는 별개로 주변 환경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전국체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딴 최현미였지만 세계선수권 대회는 5개월 차이로 나이 조건을 채우지 못해 출전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복싱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들었다. 최현미의 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로잡았다. 고개를 돌려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세계챔피언이 돼야겠다.”

고등학생이었던 최현미는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최현미는 챔피언 결정전까지 150라운드, 그것도 남자 선수들과의 스파링으로 단련하며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 최현미는 “국내에는 나와 같은 체급의 여자 선수들이 없다. 결국 남자 선수들과 스파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하며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이 시합 때 많은 효과를 본다. 힘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여자 스파링 상대 선수들 좀 주선해 달라고 코치님께 계속 말하는데 잘 안된다”고 하며 웃어 보였다.  

 

#T. ‘TITLE' - 챔피언이 된 최현미, 하지만 ’챔피언의 삶‘은 살지 못했다

혹독한 훈련 끝에 최현미는 결국 프로 데뷔 1년 만에 세계챔피언이 됐다. 2008년 10월 11일, 최현미는 중국의 쉬춘옌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고 꿈에 그리던 세계챔피언이 됐다. 공석이었던 WBA 페더급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른 최현미는 ‘이제 됐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비인기 스포츠로 분류되는 국내 복싱계에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타이틀이 박탈될 위기에도 처했었고(챔피언이 정기적으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지 않으면 타이틀이 박탈됨), 프로 전적 조작 구설수에도 휘말렸다. 어렵게 구한 스폰서에도 문제가 생겨 파이트머니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세계챔피언이 돼서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최현미의 꿈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한 최현미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타이틀을 지켜냈다. 무패행진을 달리며 타이틀 7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그는 도전의식이 생겨 체급을 올렸다. 페더급(57.15kg)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페더급(58.97kg)에 도전한 그는 또다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2013년 8월 15일, 최현미는 당시 25승 1무 7패라는 막강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푸진 라이카(37)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 

물론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타이틀을 치르지 못하는 고질병은 여전했고, 사비를 털거나 팬들의 후원금을 받으며 겨우 방어전을 치렀다. 그럼에도 최현미는 패배하지 않았다. 도중에 세계 통합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최현미는 WBF 슈퍼페더급 챔피언에도 등극했다. 대학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꾸준한 운동을 계속해왔기에 이룰 수 있었던 쾌거였다.

3차 방어전 당시의 최현미(좌)
2016년 3월 WBA 슈퍼페더급 타이틀 3차 방어전을 치르고 있는 최현미(좌)

최현미는 11월 멕시코의 제시카 곤잘레스(29, 7승 2무 3패)와의 5차 방어전을 앞두고 있다. 스폰서도 얻었다. 인천 순복음교회 최성규 원로 목사와 인연이 닿아 타이틀매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2009년 당시 최현미의 페더급 타이틀 1차 방어전 상대였던 김효민 선수를 후원하고 있던 최 목사는 8년 뒤 탈북국민 지원 모임에서 최현미를 다시 만났다. 복싱 선수의 후원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최 목사는 최현미를 만나 후원의 의사를 전달했고, 결국 최 목사는 11월에 열리는 5차 방어전까지 성사시키며 최현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최 목사는 앞으로의 최현미의 훈련과 타이틀 매치에 대해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훈련과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현미는 상대 선수 제시카 곤잘레스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스페인어로 ‘La Magnífica(장엄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곤잘레스는 파워풀한 공격이 장기다. 신장도 168cm로 최현미(170cm)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현미는 곤잘레스에 대해 “굉장히 파워풀한 선수다”고 평가하며 “키가 작았으면 오히려 때릴 곳이 별로 없어 난감했을 텐데 다행히 나와 체격이 비슷하다. 화끈한 시합이 될 것 같다”라 말했다. 

 

#N. ‘NEXT' - 도쿄올림픽 그리고 은퇴 후의 최현미

최현미는 길게 2020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있다. 복싱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최현미는 “애초에 복싱을 (2008 베이징)올림픽을 목표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여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미련이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는 것이 목표다. 올림픽 결승전이 나의 은퇴 무대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종격투기 전향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최현미도 호기심으로 취미 삼아 이종격투기를 해봤다 했지만 일단은 2020년 도쿄 올림픽 복싱 금메달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복싱선수 이후의 최현미의 삶은 욕심이 매우 많아 보였다. 최현미는 현재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 박사 과정까지 마칠 계획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을 가지고 지도자나 해설위원, 교수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복싱계와 차세대 선수들을 위해 애쓸 예정이다. 

최현미는 자신을 ‘여자복싱 선수 1세대’라 칭했다. 어린 시절 여자가 아닌 남자 트레이너 밑에서 힘들게 운동했던 기억들을 되짚어보며 자신의 후배들은 편한 길을 걸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최현미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현미는 10년 뒤의 자신이 ‘조금 더 편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현미는 “그동안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 생활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만 지금보다는 안정감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최현미는 성공적인 방어전을 위한 고된 훈련에 돌입한다. 순탄치 못했던 삶과 고단한 훈련 등이 지금의 최현미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현미는 과연 타이틀 방어와 함께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은퇴하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최현미의 WBA 슈퍼페더급 타이틀 5차 방어전은 11월 18일(토)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다. 

사진=최현미 선수 제공, 뉴시스

unigun89@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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