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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체전] 4관왕 실력&외모…훈남‧훈녀 검객의 ‘알레’

[장애인체전] 4관왕 실력&외모…훈남‧훈녀 검객의 ‘알레’

  • 기자명 이상완 기자
  • 입력 2017.09.18 18:23
  • 수정 2017.09.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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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충북 청주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휠체어펜싱 남자 개인전에서 나선 심재훈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STN스포츠(충주)=이상완 기자]

펜싱 경기 용어 중 알레(Allez)는 경기를 ‘시작’하라는 구령을 뜻한다. 한국 휠체어펜싱을 이끌 두 훈남‧훈녀가 세계를 향한 이 시작점에 있다.  

휠체어펜싱계의 ‘심스타’라 통하는 심재훈(29‧절단장애)은 ‘잘 생겨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첫 물음에 “몇몇 대학생 자원봉사 분들이 사인 요청을 해주시네요.” 호탕하게 웃었다. 시원시원한 웃음만큼이나 키도 훤칠해 남성적인 호감을 불러 모은다. 쾌활한 낙천적인 성격도 훈훈한 외모를 한층 더 빛나게 한다. 단순히 외모만 빛나서 ‘심스타’가 아니다. 실력도 으뜸이기에 ‘심스타’라 불린다. 그가 펜싱에 입문한 지는 3년째. 3년 만에 국내 최정상급 검객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17일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에페 개인전(3/4등급)에서 금메달 한 개를 추가해 대회 4관왕에 올랐다. 장애인체전 3번 도전 만에 국내를 평정했다. “선수들은 자신의 땀만 믿고 운동을 하는데, 목표로 했던 4관왕을 달성해서 너무 기쁘네요.” 심재훈은 2010년에 부모님이 운영하던 금형공장에서 일손을 거들다가 기계 부품이 이탈하는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20대의 청춘을 보람차게 보내야 할 23살 때였다. 가족을 비롯해 친구, 지인들은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심재훈의 의지는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축구, 풋살, 검도 등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체격 탓에 재활도 성공적이었다. 심적으로도 장애인의 삶을 빠르게 받아들여 사고를 당한 지 1년 만에 취업을 해 의족을 착용하고 경제활동도 이어갔다. “낙천적인 성격이 컸어요. 취업하고 잠깐 슬럼프가 왔을 때에도 미국으로 여행도 다니고 체인점도 해보고 대학교도 다시 다니고 그랬죠.” 펜싱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운동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됐다. 중‧고교시절 검도를 수련하며 입상까지 할 정도의 실력자였던 심재훈은 여러 장애인스포츠 중 펜싱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지인의 권유로 여러 운동을 해봤는데 활동적이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휠체어펜싱이 있다는 걸 알고 동영상을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죠.” 검도와 비슷한 면이 많은 펜싱은 손에 착착 맞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심재훈은 펜싱 자체를 하나의 놀이라 생각하고 즐겼다. 실력은 금세 일취월장했다. 2015년 얼떨결에 처음 나간 전국대회에서 깜짝 우승도 차지했다. 이후 심재훈은 고민 끝에 ‘한번 해보자’ 마음을 다지고 펜싱 전문선수로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꿈을 키웠다.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 장애인펜싱 실업팀(GKL 펜싱)에 입단해 안정적으로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강자 자리에 올랐지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다. 다행히 실업팀의 지원 아래 유럽 등 해외 전지훈련과 국제무대에 나서면서 간격을 좁히는 중이다. “아직까지도 외국 선수들과 비교해 신체조건, 경험 등 많이 부족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언제쯤 저 선수들을 넘을 수 있을까’였다면, 지금은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년 아시안게임, 2020년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서 한국 펜싱의 역사를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 17일 충북 청주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휠체어펜싱 남자 개인전에서 나선 김선미가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심재훈이 떠오르는 신예라면, ‘미녀검객’ 김선미(28‧절단장애)는 한국 장애인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다. ‘휠체어펜싱=김선미’ 등식 구호가 성립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김선미는 지난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 혜성처럼 나타나 깜짝 은메달을 따낸 뒤 간판선수가 됐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는 국가대표팀 홀로 출전해 개인전 8강까지 올랐고,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7년 가까이 휠체어펜싱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김선미는 열여섯 살이 되던 2004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왼 하지를 잃어 지체장애인(2급)이 됐다. 어린 나이에 중도장애인이 된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던 중 병원에서 알게 된 당시 휠체어펜싱 선수의 권유로 검을 손에 쥐었다. 펜싱의 매력에 빠진 김선미는 빠른 성장세에 2010년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실업팀이 없어 경제적으로 제약이 많아 운동에 전념을 할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운동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2년 동안 웹디자이너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직장생활 중에도 장애인체전은 꼬박꼬박 출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 연속 4개의 금메달을 품었다. “정말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도 올 초에 실업팀이 창단돼 지금은 하던 직장생활을 그만뒀어요.” 김선미는 국내 첫 민간기업(대원오지텍) 펜싱 실업팀(온에이블)에 소속돼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다시금 펜싱 칼을 잡은 김선미의 꿈은 이루지 못한 세계무대 금메달이다. 국내 여자 펜싱 선수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국내 최강자로 불리지만 정작 세계에서는 중하위권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여자선수가 없어 남자선수와 훈련할 정도다. 월드컵, 세계선수권 등 세계대회에 출전하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따르지 않았다. 김선미는 2년 간 경제적 상황때문에 운동을 못해 포인트가 없어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 세계의 벽은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김선미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갖고 길게 본다는 계획이다. “일단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은 출전이 확실시 돼 무조건 금메달을 딸 거고요. 이후 세계선수권, 2020년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을 준비할 예정이에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랜드슬램을 꼭 이루겠습니다.”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bolante0207@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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