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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밀당으로 잠재력이 폭발한' 조 콜 - 64
이형주 기자  |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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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8  10: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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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 '밀당으로 잠재력이 폭발한' 조 콜 - <64>

‘밀당’이란 말이 있다. 밀고당기기의 준말로 신조어에 속하는 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미묘한 심리 싸움을 하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로 남녀 관계에 주로 사용되나, 다른 관계들에도 사용된다. 전 프리미어리거 중 감독과의 밀당을 통해 잠재력이 폭발한 선수가 있다.

콜은 1981년 잉글랜드 런던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주목받던 재능이었다. 만 16세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의 영입을 위해 1,000만 파운드(한화 약 144억 원)를 제시했지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거절한 적도 있었다.

콜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며 성장해나갔다. 1999년 FA컵 3라운드 스완지 시티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8일 후 21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 나서며 프리미어리그에도 데뷔했다. 같은 해 콜은 FA 유스컵 우승에 기여했다. 대회 우승 멤버에는 마이클 캐릭을 비롯 촉망받는 자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콜이 군계일학으로 평가됐다.

그야말로 재능이었던 콜의 축구인생은 탄탄대로였다. 2002/03시즌 프리미어리그 2R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 14연승 도전을 좌절시키기도 했고, 글렌 로더 감독에 의해 만 21세의 나이로 주장완장을 차기도 했다.

그 시즌 콜이 2002/03 웨스트햄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분전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 했다. 이로 인해 콜은 웨스트햄에 남지 않고 다른 팀을 물색하기에 이른다.

당시 콜에게 접근했던 팀이 여럿이었으나, 결국 콜을 데려간 것은 첼시 FC였다. 당시 첼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전폭적인 투자 하에 스타들을 모으고 있었고, 콜도 여기에 합류하게 됐다.

콜은 첫 시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하에서 뛰게 됐다. 하지만 웨스트햄 때만큼의 모습은 아니었다. 팀이나 콜이나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다. 그리고 2004/05시즌을 앞두고 조세 무리뉴가 첼시의 감독의 부임했다.

무리뉴 감독의 콜에 대한 ‘밀당’은 그를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시켰다. 콜은 2003/04시즌 8R 리버풀 FC전에서 후반 19분 결승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무리뉴는 그는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며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한 시즌 뒤 프리미어리그 20R 2-0 승리 후에도 무리뉴는 “유기적인 수비를 위해서 11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단 10명만이 유기적인 수비를 펼쳤다. 나는 콜이 아름다움이나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경기를 뛰기보단 이기기 위해 뛰길 빈다”며 오히려 콜을 비판했다. 30R 풀럼 FC전에서는 전반 26분만에 션 라이트 필립스와 교체된 적도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무리뉴는 늘 콜을 깨우고, 자극하고, 동기부여했다. 물론 무리뉴 감독의 지도방식이 언제나 옳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콜에겐 딱 맞는 방식이었다. 본인 자체적으로 자기관리에 능하지 못 한 콜에게 무리뉴 감독의 지도방식은 좋았다. 무리뉴의 지도방식에 의해 콜의 잠재력을 폭발했다.

그야말로 콜이 프리미어리그를 흔들었다. 2004/05시즌, 2005/06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2005/06시즌에는 선수 협회 선정 Best 11에 뽑혔는데, 부상만 아니었다면 최우수 선수상도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2007/08시즌까지는 그가 승승장구했다. 주포지션인 윙포워드는 물론이고, 가끔씩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다. 2007/08시즌에는 첼시 최우수 선수상도 수상했으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패배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후 콜이 내리막을 걸었다. 콜의 부상이 잦아졌다. 또한 2008/09시즌 부임한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무리뉴 감독만큼 그의 잠재력을 뽑아내지 못 했다. 이에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갔다. 하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하에서 2009/10시즌 더블 주역이 되며 첼시와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었다.

시즌이 끝난 뒤 콜은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됐다. 콜에 군침을 흘린 팀들이 여럿이었지만, 리버풀행을 택했다. 당시 로이 호지슨 감독의 첫 영입이었던 콜은 No.10 셔츠까지 받으며 많은 기대감을 받았다.

하지만 리버풀에서의 생활은 좋지 못 했다. 콜의 신체적인 능력 자체가 최전성기에 비해 내려와있었다. 또한 리버풀 팬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에 한 시즌 만에 릴 OSC로 임대를 떠났다.

한 시즌 간의 임대 후 복귀해서도 활약이 미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2012/13시즌 유로파리그 첫 경기였던 FC 고멜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시즌이 완전히 꼬였다. 결국 콜은 1월 웨스트햄으로 둥지를 옮겼다.

웨스트햄에서 콜이 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다. FA컵 3라운드 맨유전에서 친정팀 복귀전을 치른 콜은 1어시스트로 제 몫을 했다. 프리미어리그 22R QPR전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첫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콜은 2시즌 간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2014년 6월 자유계약자가 된 콜은 아스톤 빌라에 합류했다. 콜은 번리전에서 득점을 하는 등 나름의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5/16시즌을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 하는 등 불운도 많았다.

2시즌 간의 빌라 생활을 마무리하고 콜이 코벤트리 시티로 이적, 현역 연장 의지를 표출했다. 그리고 현재는 템파 베이 로우디스에서 핵심 선수로 뛰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2006년 4월 29일.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5/06시즌 프리미어리그 36R에서 맞붙었다. 당시 1위 첼시는 35경기에서 승점 88점에 골득실 +49를 기록 중이었다. 2위 맨유는 35경기에서 승점 79점에 골득실 +37이었다.

첼시의 우승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었으나, 맨유가 맞대결에서 승리한다면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경기였다. 하지만 첼시가 막강한 전력을 뽐내며 3-0 완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조 콜은 후반 16분 드리블로 리오 퍼디난드를 완전히 농락시킨 뒤 득점하며 승리의 공신이 됐다.

◇플레이 스타일

테크니션 그 자체인 선수였다. 드리블, 개인기에 능해 수비수 한 명을 제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스피드 또한 발군이었으나, 나이가 참에 따라 내려온다. 득점력도 훌륭했다.

◇프로필

이름 - 조 콜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81년 11월 8일

신장 및 체중 - 170cm, 73kg

포지션 - 윙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56경기 10골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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