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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납치 사건만 없었다면…' 윌슨 팔라시오스 - 62

[EPL Nostalgia] '납치 사건만 없었다면…' 윌슨 팔라시오스 - 62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17.06.15 14:28
  • 수정 2017.07.0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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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 '납치 사건만 없었다면…' 윌슨 팔라시오스 - <62>

사실 가족의 안위만큼 한 개인을 흔들 수 있는 요소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안녕하지 못 하면, 개인은 크게 흔들린다. 걱정이 커져 본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일도 생긴다. 옛 프리미어리거 중 실력이 뛰어났으나, 가족의 안위 문제로 아쉽게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는데 실패한 인물이 있다.

팔라시오스는 1984년 온두라스 라 세이바에서 태어났다. 2002년 온두라스 리그에 데뷔한 그는 커리어 초반 거칠 것이 없었다. 온두라스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에 팔라시오스는 유럽 진출을 모색한다.

팔라시오스는 유럽 무대에서 뛰는 희망을 품었다. 팔라시오스는 세르비아의 레드 스타 베오 그라드와 프랑스의 AS 모나코 등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입단에는 번번히 실패하며 좌절하고 있었다.

높은 몸값으로 인해 온두라스 복귀도 요원해진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 때 팔라시오스에게 은인이 된 인물이 아스널 FC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었다. 벵거 감독은 트라이얼 후 팔라시오스를 영입하진 않았지만, 버밍엄 시티에 추천을 해줬다. 팔라시오스는 2007년 8월 버밍엄에 임대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팔라시오스는 프리미어리그에 처음 뛰는 선수라곤 믿을 수 없는 활약을 연이어 펼쳤다. 당시 버밍엄의 감독이었던 스티브 브루스는 극찬을 계속했다. 이전 프리미어리그의 레전드였던 폴 인스를 떠올리며, 팔라시오스에게 어린 폴 인스란 별명을 지어줄 정도였다.

당연히 다른 클럽들의 관심이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비극이 시작됐다. 당시 팔라시오스의 동생 중 한 명인 에드윈 팔라시오스가 납치를 당했다. 동생을 납치로 인해 팔라시오스는 경기를 전혀 뛰지 못 했다. 동생의 구출에만 매달렸다. 다행히 납치한 단체에 돈을 지불하면서 동생을 석방시켰으나, 그간 클럽은 바뀌어 있는 것이 많았다.

팔라시오스가 동생의 구출에 매진해있는 동안 구단이 사령탑이 바뀌었다. 팔라시오스를 아끼던 브루스 감독이 팀을 떠났고, 그 자리를 알렉스 맥리쉬 감독이 메우고 있었다. 팔라시오스는 맥리쉬 감독과 플레이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팔라시오스에게 손길은 내민 것은 또 다시 브루스 감독이었다. 2008년 1월 위건 어슬래틱으로 둥지를 옮긴 브루스 감독이 팔라시오스를 데려왔다. 팔라시오스는 위건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8/09시즌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가족 문제도 없었고, 완전 계약이었기에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또 그를 언제나 믿는 브루스 감독의 존재는 팔라시오스에게 큰 힘이 됐다. 팔라시오스는 해당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뒤흔들어놓으며 주목 받았다.

맹활약을 펼치는 팔라시오스에게 또 다시 빅클럽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토트넘 핫스퍼 등 이적설이 나는 클럽들의 명성이 상당했다. 팔라시오스가 선택한 팀은 토트넘 핫스퍼였다.

팔라시오스는 “팔라시오스의 이적에 오른팔을 잃은 것 같다”며 애통해하는 브루스 감독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발전을 위해 이적을 선택했다.

토트넘 입단 후도 팔라시오스가 승승장구했다. 팔라시오스는 첫 경기였던 2008/09시즌 24R 볼튼 원더러스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산뜻한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 25R 아스널 FC와의 북런던 더비에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26R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첫 득점을 올리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팔라시오스를 다시 가로막은 것이 동생의 납치였다. 2009년 1월 그의 동생 에드윈이 다시 한 번 납치됐다. 팔라시오스의 어머니는 눈물로 읍소하며 납치범들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팔라시오스는 그 해 5월 시신으로 발견됐다.

동생의 납치, 그리고 죽음. 팔라시오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한 납치부터 죽음까지 그 5개월 간 막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축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팔라시오스의 기량이 발전할 수가 없었다.

또한 팔라시오스가 토트넘에 머문 2년 간 경쟁자들이 막강했다. 루카 모드리치, 톰 허들스톤을 비롯하여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경기 안팎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팔라시오스가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팔라시오스는 출전 기회를 위해 2011년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

하지만 스토크 이적 후 팔라시오스의 커리어는 부상으로 점철됐다. 무릎 부상은 고질적이었고, 편도선염까지 앓았다. 팔라시오스는 버텨보려했으나, 무릎 부상은 점차 심해졌다. 수술도 반복했다. 결국 스토크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 했다.

사실 팔라시오스는 2014년 여름 카타르 SC에 입단하려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이 사실만 봐도 그를 휘감고 있는 부상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잔류한 2014/15시즌, 팔라시오스는 한 경기도 나서지 못 했다.

2015년을 끝으로 방출당한 그는 헐 시티 트라이얼을 받는 등 현역 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 했고, 2016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EPL 최고의 순간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25R에서 토트넘과 아스널의 북런던 더비가 펼쳐졌다. 경기 결과는 0-0으로 끝나며 두 팀은 우열을 가리지 못 했다. 하지만 그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 팬들, 그리고 경기를 시청한 팬들은 이날 경기에서 누가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 지 알 수 있었다. 윌슨 팔라시오스였다. 팔라시오스는 경기 후 여러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플레이 스타일

엄청난 활동량을 지닌 선수였다. 피지컬이 훌륭하여 상대 선수들이 몸싸움 도중 튕겨나가기도 했다. 드리블도 훌륭했다. 수비력이 뛰어나 수비수들이 그에게 많이 의존했다. 패스 정확도가 좋지 못 한 것은 약점이었다.

◇프로필

이름 - 윌슨 팔라시오스

국적 - 온두라스

생년월일 - 1984년 7월 29일

신장 및 체중 - 181cm, 71kg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97경기 6골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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