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EPL Nostalgia] 'R.I.P' 우고 에히오구 - 31

[EPL Nostalgia] 'R.I.P' 우고 에히오구 - 31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4.22 08:59
  • 수정 2017.07.05 21:43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R.I.P' 우고 에히오구 <31>

지난 20일 토트넘 핫스퍼는 “U-23 팀의 에히오구 코치가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비보를 전했다. 고인이 된 에히오구는 생전 따뜻한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사망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 하고 있다.

에히오구는 1972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9년 연습생 신분으로 웨스트 브롬위치에 입단했다. 이후 금방 정식 계약을 하면서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WBA에서 단 몇 경기를 뛰었을 뿐이지만, 당시 1부 리그 아스톤 빌라의 감독이었던 론 앳킨슨의 눈에 들었다. 이에 빌라에서 이적 제의를 했고 에히오구가 이를 받아들여 1991년 팀을 옮기게 됐다.

빌라는 주전 센터백 션 틸레의 이적으로 인해 그 위치에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다. 에히오구가 이를 잘 메워줬다. 당시 빌라에는 폴 맥그레스라는 또 한 명의 레전드 수비수가 있었다. 어린 에히오구는 첫 시즌인 1991/92시즌부터 맥그레스와 호흡을 맞추며 한 단계 성장해갔다.

1992/93시즌에 빌라가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이는 2017년 현재도 빌라의 프리미어리그 최고 성적으로 남아있다. 당시 에히오구는 성장 중인 유망주였기에 프리미어리그에서 4경기 출전에 그쳤긴 했다. 하지만 최소 실점 2위를 기록한 수비진에 어찌됐든 에히오구도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다.

이후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1994/95시즌 18위로 강등을 겨우 면한 것이 옥의 티였다. 하지만 1995/96시즌 4위를 기록하는 등 에히오구의 맹활약에 빌라가 안정적인 성적을 구가했다. 이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리며 기쁨이 배가 됐다.

수준급의 수비 자원인 에히오구를 도약을 노리는 미들즈브러가 노렸다. 미들즈브러는 다른 클럽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800만 유로(한화 약 97억)라는 당시 미들즈브러 최고 이적료로 에히오구를 데려왔다. 그리고 이 투자는 이후 그만한 가치가 있음이 증명됐다.

에히오구가 빌라에서 맥그레스와의 파트너쉽을 맺어 활약했다면, 미들즈브러에서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와의 파트너쉽이 유명했다. 두 선수는 이미 빌라 시절에 호흡을 맞춰본 사이였다. 미들즈브러에서 보다 농익은 호흡을 보이며 미들즈브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다만, 에히오구 개인적으로 무릎 부상이 발발한 것이 고통스러웠다. 에히오구는 2002/03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2003/04시즌 초반을 날리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 그는 2004년 리그컵 결승전에선 복귀했다. 미들즈브러는 이 때 주닝요 파울리스타, 가이즈카 맨디에타 등 공격진에 재능 있는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에히오구와 사우스게이트 비롯하여 프랑크 퀘드루, 대니 밀스가 이룬 수비진 또한 대단했다. 결국 탄탄한 전력의 미들즈브러는 리그컵 결승에서 볼턴을 2-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첫 트로피의 감격을 맛본다.

꾸준히 활약하던 에히오구 역시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며 점점 기량이 하락했다. 때문에 출전 기회도 줄어갔다. 에히오구는 더 많은 출전시간을 위해 2006년 만 34세였던 그는 웨스트 브롬위치 임대 이적을 택했다.

공교롭게도 에히오구가 임대를 택하자 미들즈브러 수비진이 줄부상을 당했다. 때문에 이 임대가 취소됐고 에히오구는 팀에 남게됐다. 에히오구를 필요로 한 WBA이 완전 이적을 제의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 좀 더 남고 싶었던 그는 이를 거절했다.

에히오구는 그 후 1년 간 현역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2006년 1월부터 딱 1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임대 계약이 체결됐다. 이번 팀은 WBA가 아니라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6개월 간의 임대 복귀 후 미들즈브러와의 계약도 종료됐다.

에히오구는 이렇듯 어쩌면 아쉽게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레인저스, 셰필드 유나이티드, 웸블리 FC 등 스코틀랜드 리그와 잉글랜드 하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2012년 유니폼을 벗었다.

에히오구는 2014년 토트넘 23세 이하 팀의 코치로 취직했다. 이후 많은 선수들에게 가르침을 전달하며 현재의 젊은 토트넘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심장 마비로 인해 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EPL 최고의 순간

빌라는 직전 시즌 18위로 강등을 겨우 면한 상황이었다. 1995/96시즌을 임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1R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긴 했으나,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빌라엔 에히오구가 있었다.

에히오구는 물 샐틈 없는 수비로 상대 공격을 차단했다. 에히오구는 공격에서도 존재감을 보였다. 후반 24분 마크 드라퍼가 왼쪽 측면에서 코너킥을 올려줬다. 에히오구가 빠른 움직임으로 공을 머리에 맞췄고 득점이 됐다. 이 경기로 자신감을 되찾은 빌라는 4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

건장한 체격 조건을 이용하여 공중볼을 따내는데 능했다. 수비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가 훌륭하여 상대 공격수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는 위협적인 득점 루트가 되기도 했던 선수다.

◇프로필

이름 - 우고 에히오구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72년 11월 3일

신장 및 체중 - 188cm, 89kg

포지션 - 센터백

국가대표 경력 - 4경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ports@stnsports.co.kr

저작권자 © ST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단영역

매체정보

  • (주)STN미디어(방송국)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419-2 부평테크노타워 8층
  • 대표전화 : 1599-1242
  • 팩스 : 070-7469-0707
  • 법인명 : (주)에스티엔미디어
  • 채널번호 : 지니 TV(131번) LG 유플러스 TV(125번) 딜라이브(236번)
  • 대표이사 : 이강영
  • 보도본부장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주)STN뉴스(신문사) : (0723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23 (정원빌딩) 10층
  • 대표전화 : 02-761-2001
  • 팩스 : 02-761-2009
  • 법인명 : (주)에스티엔뉴스
  • 제호 : STN 뉴스
  • 등록번호 : 인천 아 01645
  • 등록일 : 2009-09-04
  • 발행일 : 2009-09-04
  • 대표이사 : 유정우
  • 발행·편집인 : 유정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완
  • Copyright © 2024 STN 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ports@stnsports.co.kr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