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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코벤트리의 행복했던 추억' 브라이언 보로우스 - 29

[EPL Nostalgia] '코벤트리의 행복했던 추억' 브라이언 보로우스 - 29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4.19 16:15
  • 수정 2021.10.14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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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 = 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코벤트리의 행복했던 추억' 브라이언 보로우스 <29>

잉글랜드 중부에 30만 명을 약간 웃도는 인구 수를 보유한 코벤트리라는 도시가 있다. 30만이란 인구수는 잉글랜드로 한정하면 그리 작은 수치는 아니다. 때문에 코벤트리는 잉글랜드 도시 중 인구수로 항상 15위 안에 든다.

그 코벤트리에 코벤트리 시티란 축구팀이 있다.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아니지만, 1990년 대 후반만 하더라도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빠지지 않았던 팀이었다.

그런데 코벤트리 팬들에게 이번 주는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 많았던 한 주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15일 코벤트리가 리그 2(4부리그) 강등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던 클럽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라이벌 레스터 시티의 승승장구 때문이었다. 코벤트리와 레스터 두 클럽 사이의 대결은 더비 매치다. 두 도시 사이의 M69 고속도로에서 차용해 M69 더비라 불리는 이 더비는 잉글랜드에서 치열한 더비 중 하나다.

이미 지난 시즌 라이벌 레스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한 번의 슬픔을 겪었던 코벤트리였다. 레스터가 탈락하긴 했으나 이번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하여 선전했다. 그로 인해 유럽의 찬사를 받는 것은 라이벌 코벤트리 팬들에게 아픔이었다.

하지만 코벤트리가 이렇듯 아픔의 역사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코벤트리의 위대한 주장 보로우스와 함께 한 시절엔 다른 팀들이 별로 부럽지 않은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었다.

보로우스는 1960년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촉망받던 그는 지역팀인 에버턴 FC에서 1980년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 볼튼으로 이적하여 2년 간 활약한 보로우는 1985년 코벤트리로 이적했다. 보로우와 코벤트리가 함께하는 역사의 시작이었다.

보로우는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2017년인 지금까지도 코벤트리의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는 1986/87시즌 FA컵 트로피가 유일하다. 보로우는 스티브 오그리조비치, 브라이언 킬클라인, 시릴레 레기스 등과 함께 이 시기 FA컵 우승을 견인했다.

보로우는 FA컵 우승 당시 일주일전 부상을 당하며 결승전엔 나서지 못 했다. 하지만 당시 코벤트리 팬들은 결승전에 보로우의 이름을 연호했다. 팬들로부터 FA컵 결승행에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받는 동시에, 그가 사랑받는 선수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1992/93시즌 잉글랜드가 1부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꿔 출범했다. 이 시기에도 변함없이 팀을 이끈 것이 보로우스였다. 보로우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경기에 꾸준히 출전했고, 맹활약했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끄는 역할 역시 보로우스의 몫이었다. 코벤트리는 보로우스의 활약으로 첫 시즌에 15위를 기록, 잔류에 성공한다.

코벤트리는 두 번째 시즌에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이에 11위로 시즌을 마쳤다. 코벤트리가 호성적을 거둔 원인은 준수한 수비력에 있었다. 당시 코벤트리는 45실점만을 기록했는데 이는 프리미어리그 22개 팀 중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라이트백 위치에서 프리시즌과 시즌 초반 라인을 잡아준 보로우의 공도 있었다.

하지만 보로우스 역시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만 32세가 된 보로우는 아무래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보로우스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위해 브리스톨 시티로 임대를 갔다가 돌아왔다. 복귀한 보로우스는 1994/95시즌 코벤트리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재기했다.

코벤트리에 보로우스가 남다른 의미이듯, 보로우에게 코벤트리는 자신의 전부였다. 보로우스가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바친 곳이 코벤트리였다. 보로우스는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 간 코벤트리에서만 409경기를 뛰며 헌신했다. 이로 인해 코벤트리는 FA컵 1회 우승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 그 기간 동안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었다.

1995/96시즌 디온 더블린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주게 되는 등 구단에서 보로우스의 입지가 점차 좁아졌다. 1997년에는 스윈든 타운으로도 임대를 다녀왔다. 결국 1996/97시즌이 끝난 뒤 임대 생활을 했었던 스윈든 타운으로 완전 이적했다. 이후 1999년 은퇴를 선언했다.

◇EPL 최고의 순간

직전 시즌 19위를 기록하며 강등을 간신히 면한 코벤트리였다. 야심차게 맞이한 1992/93시즌 역시 잔류를 위해 사투를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코벤트리는 보로우스 주장 아래 초반 돌풍을 썼다.

초반 7경기에서 5승 2패를 기록했다. 상승세의 코벤트리가 8R에서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보로우스가 맹활약했다. 공격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중앙으로 보냈고, 수비에서 짠물 수비를 이끌었다. 존 윌리엄스의 득점을 더한 코벤트리가 승리를 챙기며 8경기 6승 2패를 기록하게 됐다. 보로우스가 그 돌풍의 중심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볼 컨트롤에 능한 선수였고, 공간에 대한 인식이 뛰어났다. 스피드도 훌륭했으나 날카로운 크로스도 보유하고 있었다. 커리어 시작 후 10년 간 결장 경기가 20경기가 채 안 될 정도로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 강철몸을 보유한 선수이기도 했다.

◇프로필

이름 - 브라이언 보로우스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60년 12월 20일

신장 및 체중 - 178cm, 69kg

포지션 - 라이트백

국가대표 경력 -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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