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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유난히 빛났던 2006년' 파스칼 심봉다 <21>

[EPL Nostalgia] '유난히 빛났던 2006년' 파스칼 심봉다 <21>

  • 기자명 이형주 인턴기자
  • 입력 2017.03.27 12:14
  • 수정 2017.03.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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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유난히 빛났던 2006년' 파스칼 심봉다 <21>

축구계는 24시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매일 수많은 리그에서 경기가 벌어지고 결과가 갈린다. 때문에 훌륭한 경기를 펼친 선수가 있는가하면, 부진한 경기를 펼친 선수도 생긴다. 자연히 훌륭한 경기들이 많아지면 전성기가 되고, 부진한 경기가 많이지면 쇠퇴기가 된다. 프리미어리거 중 전성기만큼은 다른 선수들이 크게 부럽지 않았던 선수가 있다.

심봉다는 프랑스의 해외령인 과들루프 레자빔 태생이다. 1999년 르 아브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SC 바스티아로 새 둥지를 틀었다. 프랑스에서 리그 앙 시절 활약이 괜찮았으나 인종 차별을 당하며 리그에 대한 애정이 떴다. 2005년 바스티아와의 계약 만료 후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와 위건 어슬래틱의 오퍼가 동시에 왔으나 새로운 도전을 택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심봉다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자마자 성공신화를 썼다. 완벽히 주전 라이트백으로 자리잡아 2005/06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나서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마다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팀을 칼링컵 결승에 올려놓았다.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무른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시즌 종료 후 심봉다는 게리 네빌, 스티브 피넌, 파울로 페레이라 등 쟁쟁한 라이트백들을 제치고 2005/06시즌 EPL 올해의 팀에 선정됐다. 또한 본선에서 뛰지는 못 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 최종 23인에 들어 준우승 멤버가 됐다. 그야말로 찬란히 빛났던 2006년이었다.

자연히 많은 클럽들의 이적 제의가 심봉다를 향해 날아들었다. 심봉다도 더 큰 클럽으로 떠나고 싶었다. 심봉다는 이미 자신을 좋아해준 위건 팬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2005/06시즌 프리미어리그 38R 아스널 FC과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적 요청서를 제출한 바 있었다.

당시 위건의 감독이었던 폴 주얼은 심봉다의 처사에 격노하여 “다시 팀에 합류하지 않으면 잔여 계약 기간 동안 리저브 팀에서 뛰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작은 클럽 위건으로서는 이적료를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위건은 약 70억 원 정도의 이적료가 아니면 심봉다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토트넘이 약 36억 원부터 제의를 시작하여 점점 이적료를 올려갔고, 팀을 떠나길 원했던 심봉다의 의사가 더해져 약 48억 원에 2006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토트넘 이적을 확정지었다.

토트넘 이적 후 심봉다는 다사다난한 나날들을 보냈다. 프리미어리그 4R에서 맨유를 상대로 훌륭한 데뷔전을 치른 뒤 순조롭게 적응했다. 프리미어리그 11R 첼시 FC전에서는 프랭크 램파드의 태클로 인해 거친 태클을 당했음에도 토트넘의 2-1 승리를 지켜냈다. 이로 인해 마틴 욜 감독으로부터 “심봉다가 투혼을 보였다”며 찬사를 받았다. 프리미어리그 16R 풀럼 FC전 토트넘 데뷔골도 기쁜 일이었다.

좋지 못 한 일도 물론 있었다. 23R 뉴캐슬 전에서 니키 버트의 뺨을 때리며 구설수에 올랐고, 2007/08시즌 16R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핸드볼 결승골로 또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심봉다의 경기 출장횟수가 줄어갔다. 1월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으로 온 앨런 휴튼의 활약 때문이었다. 후안 데 라모스 감독은 컨디션이 좋은 두 선수를 모두 쓰기 위해서 간간히 심봉다를 레프트백 위치에 기용했다. 2007/08시즌 칼링컵 결승전에서도 심봉다는 레프트백으로 첼시를 꺾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자신의 본 포지션이 아닌 위치에서 뛰어야할 만큼 입지가 좁아져있는 상태라는 것은 분명했다. 여기에 PSV 아인트호벤과의 UEFA컵 16강에서 페널티킥 실축으로 토트넘의 UEFA컵 탈락의 빌미를 만들었다. 심봉다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져갔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심봉다는 팀 동료 티무 타이니오, 스티브 말브랑크와 함께 2008년 여름 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 하지만 로이 킨 감독 아래 적응에 실패했고, 리키 사브라지아 감독에 의해 6개월 만에 토트넘에 복귀했다.

토트넘과 심봉다의 두 번째 만남은 어떨지 기대가 모아졌으나, 좋지 못 했다. 심봉다는 토트넘 복귀 후 리그 3경기, UEFA컵 2경기로 총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이 끝난 뒤 블랙번 로버스로 합류했다.

블랙번 데뷔전이었던 2009/10시즌 3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짠물 수비로 0-0 무승부를 이끌었다. 8R 번리와의 이스트 랭커셔 더비에선 결승골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심봉다는 블랙번서 한 시즌 반 활약한 뒤, 2011년 1월 2부 리그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EPL 최고의 순간

2005년 11월 5일 포츠머스와 위건이 프리미어리그 11R에서 맞붙었다. 당시 위건은 돌풍을 쓰며 쾌조의 5연승 중이었다. 직전 경기였던 10R 풀럼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던 심봉다는 이번에도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에 2-0 승리를 안겼다. 6연승. 잠깐이었지만 심봉다의 활약으로 이 시기 위건의 프리미어리그 순위는 무려 2위였다.

◇플레이 스타일

오버래핑이 장기인 라이트백이었다. 순식간에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윙어를 받쳐줬다. 활동량도 뛰어나 상대 선수들을 당황케 했다. 레프트백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 또한 갖추고 있는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파스칼 심봉다

국적 - 프랑스

생년월일 - 1979년 2월 21일

신장 및 체중 - 180cm, 73kg

포지션 - 라이트백

국가대표 경력 - 1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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