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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일반] 한국 ‘숙적’ 일본에 완승한 이상백배 한일 대학선발 농구대회의 이상백은 누구

[농구일반] 한국 ‘숙적’ 일본에 완승한 이상백배 한일 대학선발 농구대회의 이상백은 누구

  • 기자명 윤초화
  • 입력 2012.05.21 15:07
  • 수정 2014.11.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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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5회째를 맞은 ‘이상백배 한일 대학선발 농구대회(이하 이상백배 농구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20일, 한국 대학선발팀이 ‘숙적’ 일본에 승리하며 3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김종규(경희대), 장재석(중앙대), 이승현(고려대) 등이 높이의 우위를 이용해 1차전에서 92-56으로 완승을 거뒀고 그 여세를 몰아 2차전에서도 88-67로 승리했다.

한국은 이날 2연승으로 대회 우승이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주전멤버를 선발로 기용하며 2쿼터까지 12점차의 스코어로 시종일관 경기를 이끌었다. 후반에는 벤치멤버들이 주전 못지않은 활약을 해주며 82-68로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한국은 6연속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역대 전적 27승을 기록했다. 3전 전승 우승은 2008년 대회 이후 처음이며 14번째이다. 

1978년 시작된 이상백배 농구대회는 한․일 농구발전에 큰 공헌을 한 故이상백 박사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한일 양국의 농구발전과 우의 증진의 일환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백은 누구일까.

농구 팬들에게 이상백배 한일대학농구대회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상백은 일찍이 유명한 농구선수로 활약한 바 있으며, 체육이론가로서 그리고 체육행정가 또는 체육계의 지도자로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는 한국체육회장(1964∼1966)·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1964∼1966)으로서 한국체육의 발전과 그 국제적 지위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그는 일찍이 로스앤젤레스올림픽(1932)을 비롯, 베를린(1936)·런던(1948)·헬싱키(1952)·멜버른(1956)·로마(1960)·동경(1964) 등 많은 올림픽대회에 임원, 선수단장 또는 대표로서 참석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마침내 우리나라 출신의 두 번째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피선됐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농구협회 상무이사, 일본체육협회 전무이사를 지내고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일본 선수단 임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선수단 총무를 맡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농구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한․일양국의 농구 발전에 앞섰던 이상백 박사가 작고한 뒤 그의 뜻을 잇기 위해 한일학생농구교환경기가 개최됐으며 아시안게임 최우수선수에게는 이상백배(杯)가 수여되고 있다.

[사진. 대학농구연맹]

윤초화 기자 / yoon23@ons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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