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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은퇴' 김태균 "스스로 30~40점 밖에 안돼…팬들 기억에 남고파" [일문일답]

'눈물의 은퇴' 김태균 "스스로 30~40점 밖에 안돼…팬들 기억에 남고파" [일문일답]

  • 기자명 박승환 기자
  • 입력 2020.10.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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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김태균

[STN스포츠=박승환 기자]

'한화의 자존심' 김태균이 눈물의 은퇴 소감을 밝혔다.

김태균은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봤다. 김태균은 "30~40점 밖에 되지 않는 선수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지난 2001년 한화에 입단한 김태균은 일본에서 활약한 2시즌을 제외한 현역 대부분의 시간을 한화에서 보냈다. 통산 2014경기에 출전해 2209안타(3위), 3357루타(4위), 출루율 0.421(2위), 타율 0.320(5위), 홈런 311개(공동 11위) 등 굵직한 성적을 거뒀다.

기자회견에 앞서 김태균은 정민철 단장과 최원호 감독 대행, 주장 이용규에게 꽃다발 전달받았다. 그리고 김태균은 자리에 앉아 한동안 눈물을 쏟아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김태균 일문일답

Q. 2006년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우승을 못했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 2006년은 어렸었다. 워낙 좋으신 선배님들이 이끌어주셨다. 당시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는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기대를 했었다. 이렇게 우승이라는 것이 힘든지를 깨닫게 됐다. 항상 후배들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올 때는 최선을 다해서 잡아라는 말을 많이 했다.

Q. 유난히 별명이 많은데, 야속하지는 않았나.
▶ 야속하다는 생각은 없다. 팬들이 많은 별명을 지어주시면서 재밌어하고 안 좋은 별명도 많았지만, 관심이라 생각했다. 이를 접하고 보면서 나 역시도 웃은 적도 있다. 야속하다기 보다는 팬들의 사랑이고 관심이었다. 이제는 이런 별명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아쉽다. 어린 시절에는 '김질주' 나와는 이미지가 다른 별명이었다. 이미지와 달라서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팀의 중심이 되고 하면서 '한화의 자존심'이 마음에 들었다.

Q. 1년 계약하고, 부상으로 빠지게 됐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
▶ 1년 계약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도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이 난다면 결단을 내릴 것이었다. 한화 이글스라는 팀이 나로 인해서 부담이 되거나 하는 것을 줄여주고 싶었다. 1년 계약을 하면서 어느 해보다 20살 젊을 때보다 웨이트나 모든 부분에서 양을 많이 가져갔다. 후회가 남지 않게 준비했는데, 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군으로 갔을 때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준비를 했다.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열심히 했었다. 8월에 2군 가면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서산에서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 결심을 하게 됐다.

Q. 은퇴 결심 이후에도 서산에서 운동을 계속했는데.
▶ 2군 서산 야구장에는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를 해서 1군 무대에 서는지 과정들을 잘 알고 있었고,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평상시와 같게 행동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로 다녔다. 궁금한 것들도 답변을 하려고 했다. 쉽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 했다.

Q. 30홈런은 두 시즌밖에 없다. 정교함에 신경 썼나. 
▶ 아마추어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을 싫어했다. 아웃되는 것도 싫고, 삼진도 싫었다. 아웃이 돼도 배트에 공이 안 맞는 것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항상 타율, 정확성도 좋고 홈런과 안타도 잘 치고, 투수들이 꺼려 하는 타자가 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생각하고 준비했다. 프로에 와서도 이에 포커스를 맞추고 준비했다. 홈런이 많지 않지만, 스스로 생각한 좋은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했다. 개인 성적이나 나의 타격 매커니즘은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고,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Q. 스스로 생각하는 포스트 김태균은.
▶ 마음속으로는 있지만, 후배 선수들이 있어서 다 같이 포스트 김태균이 되어서 한화가 최강팀이 될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Q. 기록이 많다. 기억에 남는 기록이 있다면. 
▶ 기록을 의식하고 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300홈런과 2000안타와 1000타점을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주목도 많이 받았던 연속 출루 기록이 기억에 남는다.

한화 이글스 주장 이용규와 김태균
한화 이글스 주장 이용규와 김태균

Q.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
▶ 홈런이었다. 신인 첫 안타가 홈런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버님이 TV로 보시다가 우셨다. 첫 안타이자 첫 홈런 타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을 텐데.
▶ 모든 선수는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도 중요하다. 팀도 좋은 성적에 개인도 좋은 성적을 갖고 마무리를 하고 싶은 멋있는 상황을 꿈꾼다. 이승엽 선배나 박용택 선배처럼 좋은 마무리를 꿈꾸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있는 것이고, 선배들은 워낙 뛰어나서 가능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고, 팀 상황에서도 지금 빨리 결정을 하는 것이 모든 일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Q. 추후 계획과 단장 보좌에 대해서.
▶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못 해본 것과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배우고 싶다. 주위에 선배들도 많기 때문에 무엇을 배우고 준비를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단장 보좌 역할은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조언을 하고 조율을 하는 역할이 될 것 같다. 누가 되지 않고 좋은 결과로 갈 수 있게 준비 잘 하겠다.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하겠다.

Q. 스스로에게 한 마디 한다면.
▶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야구를 시켰다.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고 했었다. 어린 나이에 방황 아닌 방황도 했다. 야구 안 한다고 집에도 가고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고, 아버님도 잡아주셨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가야겠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후 부모님 속을 썩이고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목표를 갖고 했다. 거의 야구만 했을 정도다. 부모님이 외진 곳에 실내 연습장을 지어주셔서 투구와 배팅 연습을 할 정도로 야구만 보고 살아왔다. 아버님도 집에 오면 스윙을 1000개씩 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 않을 정도였다. 야구만 바라 보면서 해왔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이글스 유니폼을 벗지만, 더 기대되는 인생을 만들겠다.

Q. 82년생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친구들에게 머리가 복잡하거나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미안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오래 야구 잘해서 내가 하지 못한 멋있는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대표팀이나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좋은 추억이 많다. 추억을 안고 떠날 것이다. 선수들은 더 열심히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Q. 아내를 비롯한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 집에서는 워낙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의견을 존중해 주고 수고했다는 말을 했었다. 주위에서 친한 지인들은 당연히 아쉬워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오히려 내가 설득하는 입장이었다. 

Q.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 30~40점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한화가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Q. 기억 남는 스승을 꼽자면.
▶ 신인 때부터 많은 기회와 도움을 주시고 동생처럼 아껴주신 이정훈 2군 감독님. 김인식 감독님과 함께 뛰면서 그때 야구가 많이 늘었다. 개인 훈련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한 단계 선수로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님. 항상 안주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해주셨다.

Q. 어떤 생각에 울컥했나. 
▶ 그전에는 담담했고, 아무렇지 않았다. 열심히 했기에 후회도 없었다. 감정도 없어서 별것 아니구나 했다. 많은 분들의 관심에 현실로 다가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큰 관심을 받을 일이 앞으로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울컥했던 것 같다.

Q. 영구결번.
▶ 구단과 관계자분들이 결정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나보다 더 훌륭한 선수도 많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을 하고 구단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Q. 한화 팬들이 어떻게 기억해 줬으면 좋겠나.
▶ 어떻게든 기억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강점이 김별명이라는 것이 있다.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잊혀진다는 생각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Q. 프로 선수로서 한마디.
▶ 팬들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도 어릴 때는 열심히 하고 야구만 잘하려고 노력을 했다. 팬들의 소중함을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 프로 생활을 오래 하면서 얼마나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젊은 선수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인지를 못할 수도 있다. 조금 더 빨리 인지해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선수들이 그에 맞게 한 번 더 생각하고 했으면 좋겠다.

Q. 팀의 변화.
▶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 사장, 단장님 구단 관계자분들이 좋은 결정과 앞으로의 발전에 노력을 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 때문에 선수단의 생각과 정보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구단에서 무언가 추진을 하고 바꾸려고 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게 적극적인 의사 전달을 하겠다.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공부를 하겠다.

Q. 팬들이 마지막 타석을 보고 싶어 하는데.
▶ 마지막 타석 서는 것은 변함이 없다. 감사하게도 구단에서 의사를 전달했을 때 많이 논의를 했다. 한 타석이 개인적으로 소중하고 하지만, 나보다 간절하고 소중할 수 있는 타석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 하는 생각을 했다. 번복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타석에 어떤 선수가 나가서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진=박승환 기자

STN스포츠=박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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