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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Nostalgia] '맨유의 혼' 로이 킨 – 180

[EPL Nostalgia] '맨유의 혼' 로이 킨 – 180

  • 기자명 이형주 기자
  • 입력 2020.05.30 01:00
  • 수정 2020.05.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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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킨
로이 킨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맨유의 혼' 로이 킨 - <180>

최근 미국의 영상 상영 업체인 넷플릭스는 ‘더 라스트 댄스’라는 다큐를 만들었다. 이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인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는 향수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는 동경을 선물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도 코로나19로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이를 시청했다. 솔샤르 감독은 지난 10일 영국 언론 <데일리 스타>를 통해 “당시의 시카고 불스는 내가 뛰던 시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를 떠올리게 했다”라고 전한 뒤 “또 조던은 리더쉽적인 측면에서 이 선수를 떠올리게 했다”라고 밝혔다. 조던과 치환될 수는 없겠으나 이 선수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일랜드 언론 Irish Examiner에 따르면 킨은 어린 시절 복싱을 하는 등 일찍부터 스포츠와 친숙했다.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소년기에는 또래에 비해 너무 작았고, 청소년기 당시의 실력은 열정만큼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킨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트라이얼에 몇 차례 참가하지만 계속 고배를 맛 봤다. 이후 아일랜드 정부가 실시한 공공근로사업 중 축구 분야에서 일했다. 코브 램블러스 소속으로 뛰면서도 이 반쪽짜리 프로생활이 계속됐다. 

그런 그에게 1990년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아일랜드 언론 <아이리쉬 타임즈>에 따르면 당시 노팅엄 포레스트의 스카우터였던 노엘 맥카베 씨가 킨의 한 경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 맥카베 씨는 즉각 감독에게 이 선수를 한 번 봐달라 추천했다.

킨이 입단 테스트를 받던 당시 노팅엄은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클러프 감독은 더비 카운티, 노팅엄 포레스트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견인한 괴짜 명장. 특히 노팅엄에서는 현재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컵을 제패하기도 했다. 

킨은 입단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했다. 상대적 약팀들을 정상에 올려놓았던 명장 클러프는 킨의 잠재력을 바로 알아봤다. 노팅엄은 그를 영입했다. 킨이 합류하던 당시 노팅엄은 스튜어트 피어스 등 실력있는 베테랑들이 많은 팀이었다. 킨은 노팅엄에서 유럽 정상급 미드필더로 도약했다. 

킨이 노팅엄에 머물렀던 세 시즌 중 마지막 시즌인 1992/93시즌 노팅엄은 비운의 강등을 당하게 됐다. 노팅엄이 투자를 줄이면서 전력이 약화된 탓도 있지만, 역대 최고 실력의 강등팀이라는 별명이 심심치 않게 붙을 정도로 그들이 지닌 실력에 비해 승점이 따라주지 않은 시즌이기도 했다.  

전 유럽이 주목하는 젊은 미드필더가 된 킨의 입장에서 1993년 노팅엄의 강등 이후 선택을 해야 했다. 가장 근접했던 팀은 블랙번 로버스였다. 케니 달글리쉬 감독이 이끌던 블랙번은 직전 시즌 앨런 시어러를 영입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었다. 킨 영입을 통한 중원 강화로 그 방점을 찍겠다는 각오였다. 

아일랜드 언론 <아이리쉬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킨과 블랙번은 이적을 잠정 합의하고 마무리를 짓기만 하는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금요일 서류 처리 중 오류가 발견돼 협상이 지연됐다. 돌아오는 월요일 날인을 하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맨유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접근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위해서는 킨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그의 영입을 진행한다. 결국 승리팀은 블랙번이 아닌 맨유였고 킨의 새로운 행선지가 됐다. 

당초 킨의 출전 시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맨유에는 브라이언 롭슨과 폴 인스라는 EPL 최정상급 미드필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롭슨이 부상과 고령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고 이 자리를 킨이 꿰차게 된다. 고참 선수들과 동행하며 부담 없이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도 호재였다. 킨은 첫 시즌 리그 및 FA컵 더블로 보상도 받게 됐다. 

1994/95시즌의 경우 킨에게도 맨유에도 좋지 못한 시즌이었다. 당시 팀의 리더였던 에릭 칸토나가 관중의 부모 모욕으로 화가 났고 이로 인해 쿵푸킥을 해 8개월 출장 정지를 당했다. 구심점 없는 상황에서 킨이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FA컵 4강전 퇴장으로 결승전에 나서지 못해 팀의 무관을 막지 못하는 등 아쉬움이 남았다. 

킨이 헌신한 맨유. 그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킨이 헌신한 맨유. 그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하지만 주저앉을 킨이 아니었다. 한 시즌 후 다시 팀을 최정상으로 복귀 시켰다. 1995/96시즌은 킨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데 본격적으로 맨유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 시즌이기 때문이다. 

해당 시즌까지도 칸토나가 리더이기는 했지만, 킨의 입지 역시 엄청나게 상승해있었다. 또한 이 시즌 퍼거슨 감독은 유스의 데이빗 베컴, 게리 네빌 등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리빌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킨은 리빌딩 코어였고, 선수단을 안팎으로 이끄는 이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 시즌 킨은 팀의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더블을 이뤄낸다. 

킨은 1996/97시즌에도 맨유가 리그를 제패하는 것에 공헌했다. 이 시즌이 끝난 직후 칸토나가 이른 은퇴를 선언하면서 킨이 맨유 주장으로 임명됐다. 이미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던 그지만, 1997/98시즌부터 킨을 위시한 맨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97/98시즌 주장으로 치른 첫 시즌. 킨은 맨유 입단 후 최악의 시즌을 맞게 됐다. 킨은 이 시즌 리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미드필더 알프 잉에 할란드와 신경전을 이어간다. 날이 서 있던 킨은 할란드에게 백태클을 가하려다 도리어 자신이 깊은 부상을 입게 됐다. 불 같은 성미를 이기지 못해 부상을 자초한 것이다.

킨은 이 시기 맨유의 핵심이었기에 본인은 물론 팀에 해를 입히는 행동을 자초한 것이다. 맨유는 이 시즌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 FC에 리그와 FA컵을 모두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잉글랜드 리그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그들이 타 팀에게 더블을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킨이 곧바로 반전드라마를 만들어냈다. 

1998/99시즌 UCL 4강 2차전 라인업. 화려한 명단이 눈길을 끈다
1998/99시즌 UCL 4강 2차전 라인업. 화려한 명단이 눈길을 끈다

1998/99시즌. 맨유가 전설적인 트레블을 이뤄낸 시즌이다. 맨유가 우승한 리그, FA컵, UCL 모두 가치있는 대회였지만, 그 중에서도 UCL 우승은 남다른 의미였다. 헤이젤 참사 이후 몰락하던 리그의 가치를 끌어올린 역사적인 우승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뤄내는데 킨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킨은 시즌 내내 시종일관 활약하며 언론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UCL 4강 2차전 유벤투스 FC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킨의 활약이 영웅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맨유의 혼을 상징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UCL 제패를 위해 전진하던 맨유는 1999년 4월 4강에서 유벤투스를 조우하게 됐다. 당시 유벤투스는 유럽축구 세계관 최강자라 불려도 무방했다. 마르첼로 리피라는 명장 아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안토니오 콘테, 필리포 인자기, 치로 페라라, 지네딘 지단 등 스타들이 즐비했다.  

당시 유벤투스는 직전 시즌까지 3시즌 연속 UCL 결승행을 이뤄낸 직후였다. 1996년 우승, 1997년 준우승, 1998년 준우승을 기록한 유벤투스는 3시즌 만의 우승을 이루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당시 전력 상으로 맨유가 밀린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1차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1-1로 비긴 맨유는 2차전 유벤투스 원정을 떠났다. 이날 경기에서 맨유는 전반 6분, 전반 11분 필리포 인자기에게 2실점하며 끌려갔다. 맨유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원정 다득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2골을 뽑아내야 하게 된 것이다. 당대 최강 유벤투스를 상대로 2골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킨이 맨유의 혼을 불러일으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포기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행동으로도 보여줬다. 전반 24분 킨은 코너킥 상황에서 크로스를 받아 헤더 득점을 올렸다. 포효하는 킨에 맨유 선수들과 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날 맨유는 킨의 골을 포함 3골을 몰아치며 3-2 대역전승을 거뒀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킨이 지단을 수비하다 경고 누적 징계를 받으며 결승전에 결장하게 됐다는 것. 하지만 동료들이 드라마의 마지막편을 잘 집필해줬고 맨유는 UCL 결승서 추가시간 2골로 누 캄프의 기적을 쓰며 뮌헨은 2-1로 제압한다. 킨은 팀의 리그, FA컵, UCL 우승을 견인한 트레블 주장으로 우뚝 섰다. 

킨의 질주는 계속 이어졌다. 1999/00시즌에는 그가 엄청난 공격력을 뽐낸다. 킨은 이 시즌 모든 대회 합쳐 45경기에서 12골을 집어 넣는데, 그의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기록이었다. 수비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클래스가 있는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이후 5년 간 킨은 EPL 왕좌를 다투는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맨유의 반대편에는 아스널 FC가 있었고 그 아스널에는 패트리크 비에이라가 있었다. 퍼거슨vs벵거, 킨vs비에이라의 라이벌리는 EPL을 발전시키는 것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2005년 킨은 비에이라가 팀 동료 네빌과 마찰을 빚자 주장으로 나서 목소리를 내며 싸웠는데 이는 이후 회자되기도 했다. 

2005/06시즌에 이르러 맨유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직전 시즌 맨유 최고의 선수상을 받은 레프트백 가브리엘 에인세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안팎으로 선수들의 부상에 허덕이던 맨유는 초반 휘청인다. 

이 과정에서 11월 미들즈브러와의 리그 경기가 열렸다. 이날 맨유는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 선수단의 리더인 킨은 경기 후 MUTV를 통해 “능력이 없으며 떠나라”며 팀 동료들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판했다. 이는 널리 퍼지게 되고 퍼거슨 감독의 진노를 부르게 된다. 

그 전까지도 킨이 선수단 내에서 리더 역할을 했지만 이 행위는 명백히 감독에 대한 월권이었다. 킨과 마찬가지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아 스쿼드에 포함된 선수들을 비공개가 아닌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평소 클럽보다 위대한 스타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퍼거슨 감독은 킨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키노게이트’로 인해 11월 18일 킨은 오랫동안 몸 담았던 팀에서 방출당하게 됐다. 

킨은 1월 셀틱 FC로 합류했으나 부상 등으로 반 시즌 만을 뛰고 은퇴를 했다. 맨유는 아직 앙금이 있었지만 맨유 대 셀틱 간의 자선 경기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맨유의 혼이었던 선수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1999/00시즌 숙적 아스널과의 대결에서 득점을 하는 로이 킨
1999/00시즌 숙적 아스널과의 대결에서 득점을 하는 로이 킨

◇EPL 최고의 순간

1999/00시즌 4라운드에서 당시 앙숙 아스널과 맨유가 맞붙었다. 맨유는 전반 41분 프레드리크 융베리에게 실점을 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맨유에는 당시 득점력이 물오른 킨이 있었다. 킨은 후반 13분과 후반 43분 득점을 뽑아내며 팀에 역전을 선물했고 결국 맨유가 승리했다. 

◇플레이 스타일

올 라운드 미드필더. 다재다능의 끝판왕.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백 보호의 끝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 자리 수 골을 득점할 줄도 알았다. 중앙 미드필더로 팀의 중심을 잡은 그는 패스, 태클, 활동량, 투쟁심 등 모든 면에서 타 선수들의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다만 불같은 성미라는 축구 외적인 요인으로 타 선수들, 심판들과 마찰을 빚은 점은 옥에 티였다. 

◇프로필

이름 – 로이 킨

국적 – 아일랜드 

생년월일 - 1971년 8월 10일

신장 및 체중 – 178cm, 77kg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국가대표 기록 – 67경기 9골

EPL 기록 – 366경기 39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1992/93시즌~2005/06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크리스탈 팰리스 공식 홈페이지

블랙번 로버스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 마켓> - 선수 소개란

<데일리 스타> – Ole Gunnar Solskjaer compares Man Utd to Chicago Bulls after watching The Last Dance

<더 선> - Premier League Christmas advent calendar – December 6: Roy Keane performs a live amputation on Alf-Inge Haaland

<가디언> - Juventus 2-3 Manchester United: 1999 Champions League semi final as it happened

Irish Examiner - Roy Keane: "I hear players saying after defeats ‘there’s always next year’ but there isn’t"

<아이리쉬 타임즈> - A failure by the time you're 21

<아이리쉬 인디펜던트> - 'I felt bad' - Roy Keane's confession to Kenny Dalglish as the duo discuss THAT aborted transfer for the first time

사진=이형주 기자(영국 맨체스터/올드 트래포드), 영국 언론 <가디언>, MUTV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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